"청송당 옛터라니 마음도 그리워 터잡은 도상일세 예가 새롭다"
잣골(현 종로구청운동)에 터잡은지 내년이면 어언 70년의 년륜이 그려지는
우리들의 모교 도상(경기상고)교가의 한구절이다.

"청송당"이란 조선선조시대의 유명한 한학자 우계의 엄친이신 청송께서
도학을 탐구하시며 칩거 하셨던 옛터전을 말한다.

우리는 그 표석곁에 자주 모여 젊은날의 열정을 불태우며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보곤 했다.

그러한 연유로 우리는 "청송"이라는 말을 자주 썼으며 지금도 청송당하면
갓 시집간 색시가 그리워하는 친정같은 포근함이 되새겨지기도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 그간 우리 모교는 명문실업고 답게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정계 경제계 금융계등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22회로
49년 이른봄에 1백13명이 졸업했다.

그후 우리는 6.25전쟁,기타 사회혼란등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만 했다. 세월이 누적됨에 어느덧 반백이 되고 옛친구들이 그리워져
84년 모교개교 60주년기념행사의 모임을 계기로 우리동기는 연1회의
동기동창회이외에 매월 22일(22회의 상징)에 재경 동창이나마 모임을
갖기로 정한바 있었다.

그러나 매월 22일이 달마다 요일이 달라 모임에 불편함이 많아 22일과
제일가까운 셋째주 수요일을 모임일로 선택함으로써 청송22삼수회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모임을 통해 상호간의 친목은 물론이고 경조사 가사처리
건강관리등 많은 협조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두터운 관심을 서로 지니게
됐다. 나아가서는 매년 봄 가을 두번의 부부동반 나들이도 마련하게되어
가정적으로도 친숙을 도모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부인들은 부인들끼리 매월
일정한날 모임을 갖고 친형제 이상의 우애로써 좋은일 궂은일을 서로
의논하고 또한 분담하고 있다.

우리 모임은 또한 여기서 그치지않고 모교에 대해서도 장학기금및
운동부기금을 협조 하는등 남다른 성의를 다하고있다.

지난 84년5월 개교60주년 기념행사를 모교교정에서 개최할때 우리모임이
주동이되어 일본인동창(해방전 한일공학이었음)2백40여명을 직접
참석하게끔 하였다. 약1년여에 걸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일본전역에
산재해 있는 동창2백40여명을 초청한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우리 모임의 회원은 또 모교의 명성을 높이는데도 크게 이바지 하였다.
49년 졸업당시 소위 명문교인 서울대 연대 고대의 합격률이 지망자의
96%였던 것이다. 상대 법대는 물론 실업계열하고는 인연이 먼 공대 의대
약대 치대 농대등 광범위하게 합격하였었다. 서울대상대는 16명이
지원하여 전원이 합격하였으니 실로 대위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위인들이 점차 유명을 달리하니 섭섭하고 허무하기 짝이없다.
삼수회의 현재 멤버로는 상공부장관으로서 명성을 떨친 한봉수학우가
총동창회장으로서 모교발전에 열과성을 다하고 있으며,이를 보필하느라
신우균학우가 사무장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삼수회간부로 민도식사장((주)문화칼라),장을종씨(자영업)및
김동대학우(교육계)가 고생하고 있다.

이밖에 이철제박사는(안과전문의),김원기씨(치과전문의),양학우씨가
의료계에서 활동중이며,교육계에서는
김동대씨(한양공고),이창효씨(도봉상고)정년을 눈앞에 두고 막판의 정열을
쏟고있다. 상공부관료출신인 이은탁학우는 한일방직사장으로 재직중이며
배영한학우는 한국유화시험검사소장을 끝으로 지금은 독서삼미에 여념이
없다.

또한 금융인으로는 고의근씨 김영수씨 최경찬씨(상업은행)유호석씨
문평식씨(국민은행)원태길씨 이강옥씨(산업은행)현보씨(조흥은행)가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외 양재열씨 김장규씨 이동완씨 이강억씨는 각사의 결산보고조정업무에
열을 올리고있는 현직 회계사들이다.

영화감독출신의 정창화학우(화풍흥업사장)를 위시하여 서정균씨
이순재씨(윤동우씨 손광훈씨등이 자영업에 종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데 대하여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며 오로지 세번째 수요일 모임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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