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 다자간협상의 부진에 따라 양자 협상에 의한 통상문제
타결을 노리는 미국의 압력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클린턴행정부는
지적재산권 문제와 관련,음반 비디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국내 불법유통
등을 지적하고 이달말까지 한국이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을 경우 현재
스페셜 301조상의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되어 있는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한국의
최근의 법제화와 의식변화는 사실 괄목할 만하다.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87년에 제정된 이후 특허관계법들과 상표법이 정비되었고
영업비밀보호를 위한 부정경쟁방지법의 개정이 발효되었으며 반도체칩
보호를 위한 법도 제정되었다. 특히 컴퓨터소프트웨어 보호의 경우
저작권법에 의한 소프트웨어보호가 미국에서도 많은 학술적.사회적 논란의
단계를 거쳐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데 한국은 이러한 논란을 입법및
해석으로 일소하였다. 저작권법에 대한 국민의식의 전반적 향상은 최근
쏟아지는 저작권법관계 책자들로도 입증된다. 더욱이 현재 미국에서도
한창 문제시되는 "look and feel",즉 프로그램의 코드만이 아니라 그
시각적인 효과나 패턴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저작권자의 권리주장등
저작권에 의한 소프트웨어 보호가 안고 있는 첨단의 병리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수년간의 짧은 시기에 일어났음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에 대한 미국의 타성적인 불만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정작 우려해야 할것은 최근 일련의 지적재산권 관계법들이
국내산업의 발전을위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의해 졸속 입법되었다는 사실이 향후 국내업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다.

공권력에 의한 법의 편의적인 집행도 문제이다. 최근 검찰은 지적재산권
관련 통상대책의 일환으로 시중 불법복제 저작물에 대한 특별단속기간을
설정하고 용산 전자상가등을 덮쳐서 불법 복제업자를 검거하고 있다.
이처럼 당장의 통상압력을 모면키 위한 일관성 없는 법운용은 법의 한
중요한 기능이 항구적이고 예측가능한 영업환경의 조성에 있다고 볼때 그
단속의 대상이 되는 군소 컴퓨터판매업자나 그 보호의 대상이 되는
소프트웨어제조업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값싼 복제품의 범람은
국내 소프트웨어개발업자의 투자의욕을 상실케 하여 국내산업발전을
저해하므로 현재 친고죄로 되어있는 형사처벌규정을 개정하는 근본적인
정책전환이 검찰의 단속에 선행되었어야 한다.

미국산 소프트웨어 제품의 최대 불법복제자는 바로 미국의 소비자라는
말도 있지만,우리의 경우에도 소프트웨어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풍토가
개선되기 위하여는 끊임없는 계도와 홍보가 필요하다.

졸속입법이나 공권력의 편의적 행사는 법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통상마찰 무마라는 소기의 목적마저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도리어 행정부의 편의적 공권력 행사는 대외적으로 우리정부가
그간 지적재산권 보호를 소홀히 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비칠수도 있다.
미국은 이제 시장개방이나 지적재산권보호를 위한 법규의 제정을 요구하는
단계를 벗어나서 한국정부의 법시행에 대한 의지를 묻거나 관계규범을
명료화하고 재량권의 발동을 축소하도록 그 통상요구의 초점을 바꿔가고
있다.

일시적인 통상대책에 앞서서 국가 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장기적인
지적재산권 정책이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이 정책이 일관되게 시행되어야
한다. 아직도 정부의 각종 규제에는 납득할만한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권위적 행정문화의 산물이 많다. 정부의 정책이 일부
관료의 감이나 관성에 의존하여 수립되는 경향이 있어 왔으나 앞으로는
보다 명료한 룰의 제정을 위한 실증적인 연구와 광범위한 업계의견을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적재산권 정책의 수립은 새로운 규범의 창조를 의미한다. 지적재산권의
보호에는 선발기업과 후발기업,그리고 기술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법들도 발전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이해관계의
조화를 위해 꾸준히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지만 반면에 지나친 보호도 타인의
창작을 저해하거나 산업계 전반의 발전을 위축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적정한 보호수준"을 찾아내는 것이
정책수립자와 관계전문가들의 과제이다. 보호의 메커니즘도 사회의 비용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선.후진국간의 기술이전 촉진이나
개도국이 부담하는 기술사용료의 조정등도 국제규범의 창조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숙제이다. 국내제도의 정비와 통상대책을 위해 전문가
양성과 이용이 시급한데 이에 대한 정부나 업계의 관심정도는
구태의연하다.

새로운 규범의 창조에는 일반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는
국회의 입법기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국회는 헌법상의 입법기관으로서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결집하여 이를 제도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협상의 경우에도 그 결과가 국가경제와 민생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행정부에만 일임할 수 없으며 이를 공개의 장으로 유도하여
국민의 비판을 받도록 하는 역할을 국회는 수행해야 한다.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의 경우 국회의 입법을 통하여 이를 아예 협상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