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진행중에 있다. 과거에 할수없었던
여러가지의 제도와 관행을 민주적으로 고쳐나가고 있고 특히
공직자재산공개와 같은 가히 혁명적인 조치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고치기 어렵다고 거의 체념했던 일들이 여론을 등에 업은 문민정부에 의해
고쳐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에 쌓여온 고질적인 모순중 적어도
몇가지는 개선과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위로부터의 개혁이
완전히 성공하자면 아래로부터의 개혁과 맞물리는 변화가 있어야한다.

변화의 시작은 위로부터이지만 그 바람이 아래로 확산되면서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바람으로 승화되어 위를 더 변하게 만드는 계기가 이번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부터 시작된 개혁은 오래지않아서
변형되거나 변질될수 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해야할 것은 개혁의 대상은 고위공직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온국민이 모든 면에서 병들어 있고 부패해 있으며
공직자들은 표본으로 돌출해있을 뿐이다. 공직자들이 일반시민이나
비공직자들은 하지않는 일들만 골라서 한것이 아니며 공직자들을
부패시키는데에 비공직자들이 직접 간접으로 기여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같이 반성해야 한다. 즉 아래로부터의 의식개혁의 바람이 일어나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이 돈이 필요하게 된데에는 유권자나 시민의
책임도 없지않다. 국회의원은 마치 봉과 같이 모든 일에 금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않을때는 다음 선거에 영향을 받는다면 사정이나 개혁은 아무리
자주해도 자금수요는 줄어들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자금조달을 하면서
사리나 사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시민의식의
개혁목록에서 시발점은 개인의 준조세를 없애는 일이다. 기업에만
준조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준조세가 있다. 준조세는
무엇인가. 세금과 같이 반드시 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내면 신상에
이롭지 못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내는것이 안내는 것보다 나은것이
준조세이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경조사의 부조이다. 통지를 받고
가보지는 못할 망정 부조금은 내도록 되어 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지 않으면 내고도 오히려 욕먹는 것이 기막힌
사정이다. 연락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인간노릇을 제대로 하자면
시간과 돈을 물쓰듯 할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웬만큼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이나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월급받아서
경조비를 충당한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맞지 않게 되어있다. 하물며
지역구를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이 연락을 받고 성의라도 표시하지않을
용기가 과연 있을까. 이런 상태에서 개혁만 강조하면 처음에는 사재를
축내어 가면서라도 버티겠지만 얼마안가서 옛날로 돌아갈수 밖에 없는 것이
뻔한 이치이다.

원래 부조는 우리 전래의 미풍양속이며 오늘날의 보험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 조차 어려운 생활에서 초상을 치른다는
것이나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서민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연히
십시일반의 도움을 필요로 하여 생겨나게 된 것이다. 멀리서 온 친지나
친척들에게 음식물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며
협소한 장소에서 잠을 자기가 불가능하므로 초상집의 날새기하는 습관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정도의 소득수준과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속에서 옛날식의 관혼상제방식을 낭비적인 방향으로 고집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장례식비용정도는 저축할수있거나 융통이 가능한
상태에서 부조를 통해 필요액이상으로 조달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에도 정작 부조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부조를 받아도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수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것이야 말로 모순의 악순환이다. 전래의 미풍양속이
짓밟히고 교묘하게 변질되어 모순과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경우의 한
예다.

이 개인적 준조세는 악순환적인 고리에 얽매여 있으므로 어디서
끊어야할지 분간키 매우 어렵다. 보험적인 측면을 보자면 지금까지 불입한
보험료가 일시에 날아가 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고통을 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 기회에 이것을 고치지
않고는 영원히 못고칠지도 모른다.

개인적 준조세의 폐지는 조의나 축하를 표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애도를 표하거나 조의를 표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므로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의나 축하가 돈으로 표시되어야 하는한,또한
강요되다시피 반대급부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한 그것은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벗어날수 없게 된다. 회갑잔치까지 알려서 축의금을 내게할 정도로
상업화내지 세속화되어 있으면서 미풍양속 운운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부조를 없애는 것을 반대한다면 그 부조가 당사자에게 가지 않고 장학회및
공익법인등과 같은 단체나 기관에 가도록 하고 그 내역만 당사자에게
가도록 하면 될 것이다. 고인의 명의로 주는 장학금이나 결혼기념으로
마련된 도서관의 도서들은 세세손손 빛나는 유산과 기념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해야 전국민에게 파급된다.

부조의 보험적 기능도 무시할수 없으므로 금융기관이나 보험기관이
경조사에 대비하는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면 해결될수 있고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는 대출에 의해서 해결하면 된다. 이런 준조세가 없어지지
않으면 정치권의 개혁도 일시적일수밖에 없다. 부조를 정상화시키면
공직자의 판공비나 정보비등도 정상화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도 자기 돈으로 부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다시 오기 어려운 계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아래로부터의 의식개혁바람이 불어닥친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수
있다. 이런 개혁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각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국민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