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전개되는 정치.행정 개혁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통성에 기초한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진정으로 환영할만한 일들이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행정규제의완화,경제 100일정책등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느끼게 된다.

첫째 세계 어느 정권을 보더라도 새로운 대통령 취임 이후 단시간내에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를 보여줬던 경우가 거의 드물다는 점이다. 이는
대통령 자신의 개혁의지에 크게 힘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사회기득권층을 그렇게 쉽게 동요시킬 수
있었던 요인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 사회적 요인은 과거 30여년간
산업화가 가져온 한국사회구조의 특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국가주도형 산업화는 전통사회 구조가 깨지고 취약한 기업구조 속에서
국가권력 의존적인 사회를 낳았다. 이의 구체적인 형태는 신가족주의로
집약되는 학연.지연.혈연에 기초한 다도해사회라는 점이다.

이러한 신가족주의 사회는 각종 비밀속에서 법적용에 있어서 예외주의와
편법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계급이나 계층으로 연합된 대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익창출에는 협조를 할 수 있었으나 그들을 비호했던
국가권력이 대항할 때는 저항 세력을 잃게되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지도층 인사의 재산공개는 재산의 공개 이상으로 이를 가능하게 했던
한국사회구조의 전근대성을 표출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향유했던 각종 정보의 독점과 정보를 저렴하고 적시에 얻을 수
있었던 조직망의 변화가 없는한 근본적인 개혁은 있을수 없다.

둘째 이번 재산공개는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고 있는 동시에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모든 논객이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어느 시점에서 재산공개나 앞으로 나타날 개혁들을 어느 정도 깊숙이
추진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 설정에서 논란과 애매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기준 부재현상과 더불어 재산공개 문제는 구체적인
분배정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상황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과거 30여년간
우리는 사회 형평문제에 사실상 둔감하거나 외면해 왔다. 그 주된 요인은
모든 사람이 성장과정에서 자리잡기에 휩쓸려 있었고 정치와 행정 역시
"분배의 정치"라기보다 "생산 성장의 정치"에 몰두해왔기 때문이다.

소득의 불균형,지역발전의 불균형,조세비형평등 불합리한 제반문제에 대해
많은 불만과 불평을 해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새로운 산업사회에 맞는
한국형의 장기적으로 이상적인 분배 형평의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한 논의가
없이 일시적,부분적,대증요법적,정책적 접근이 그 대종을 이루어 왔다.

재산공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동시에 직.간접적으로 의식 무의식적으로 사회 형평이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않으면,또 그것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것은
재산공개를 지지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가의 기준이 된다는 데서 나오며 이 사건의 해결은 새롭게 분배정의
기준설정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생산정치의
일환인 경기부양등 투입 정책을 우선시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이는 더욱더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배정치"에 관한 논의를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산업화의 과제를 끝내고 성숙된 자본주의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분배의 문제이기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은 시장의 원리와 국가조정 원리의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행정 규제의 완화는 일단 환영해야 할
것이나 중.장기적으로 생산위주형 행정 중심으로 모든 규제를 푸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규제가 아닌 조정 기능은 역으로 강화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관료체제를 진정한 관료체제로 정립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관료제도는 인사문제와 국가행정의 무질서한
확장으로 인한 하급관리의 프티관료화,상급층의 정치화등으로
관료체제로서의 일관성을 상실한 모습이었다. 국가기능과 조직의 확대로
법과 제도의 적용이 어렵게 될때 나타나는 것은 바로
부정.부패이기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기능 특히 조정 기능의 강화가 곧
부정.부패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개혁과정에서 공무원 개개인의 문제중심보다 관료체제 전체의 성격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할 것이며 개혁과정에 나타날 관료의 정치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개혁의 요체는 국가권력의 공정성 확보와 이를 위한 법과
제도의 운용에 있어 일관된 원칙의 준수,이를 보장하기 위한 공개성의
제도화로 요약할수 있다.

이렇게 볼때 현재 한국 개혁에서 나타나는 과다한 대통령 의존적개혁에서
의회와 사회가 동시에 참여하는 분담형 개혁으로 나아가 개혁의 어려움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 역시 분담할수 있는 개혁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는 마치 공직자만 부패하고 이들을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이 면제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조류가 나타나고
있다. 비록 공직자들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나,정신적으로 우리 사회는
모두 부패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의 공직자 재산공개
실시의지가 국민전체의 정신적 타락을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하는 특효약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