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관심속에 오늘 대동은행을 시작으로 잇따라 은행주총이 열린다.
올해 은행주총은 시기적으로 새정부 출범을 며칠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금융자율화가 그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올해에는 임기가 끝나는 은행장 3명을 비롯 인사대상인원이 60여명에
그치고 있어 작년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앞으로의
은행인사의 기본틀이 될뿐아니라 문민시대의 금융자율화를 점칠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개방화.자율화는 거스를수 없는 대세다. 그런데도 이과정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인 금융자율화는 초보단계에서 맴돌고 있다.
금융자율화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많다. 그러나 그가운데 가장
중요한게 인사자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사의 중요성은
인사는 만사라는 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은행인사가 그동안 잘못돼 왔다는건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은행에서
출세하려면 평소에 얼마나 인사를 잘하고 다녔는가,학연과 지연등 줄대기를
얼마나 잘 했느냐가 중요하다는건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주주총회에서 임원을 선임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그건 형식에 불과했다.
주주총회는 사실상의 인사권을 가진 당국의 의사를 확인하고 받들어주는
요식기구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고 있다. 김영삼차기대통령은 "인사는 만사"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고 지난번 선거공약으로 금융기관의
경영.인사자율화추진을 약속한바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는 과거 잘못된
관행의 탈피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의 은행주총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총은 정부가 바뀌는 시기인데다 외형상으로는 관계당국에서도
예년과 달리 크게 개입하고 있는 흔적을 보이지않는것 같다. 재무부등
금융당국은 과거와 같은 음성적인 형태의 "인사지침"을 내리지 않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그러나 어느 은행장 자리에는 누가 앉을것이라느니 하는 출처불명의
소문은 돌고 돈다. 물망에 오르는 후보가 어디에서 거론되고 어떤 통로를
거쳐 확정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있다. 당국이 말로는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사실상,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개입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 주총에 관심이 더욱 모아지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금융기관 인사의 자율화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않고 은행 스스로가 인사를 결정하고 또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은행인사 불개입태도는 그동안 은행의
주인행세를 해오던 정부가 그걸 그만 두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면 은행의 주인은 누구인가. 현행법에는 대주주라 하더라도
은행지분을 8%이상 소유할수 없다. 따라서 몇몇 대주주가 서로 담합을
하면 은행주인이 될수있고 정부대신 새로운 주인이 은행인사를
결정한다는것은 은행인사에 재벌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은행인사가 이와같은 새로운 주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인사자율화의 참뜻은 아니다.

은행은 일반상사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뼈대가 되는 신용제도를
지탱해야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지식과 경륜을 갖춘 유능한 인재가
은행임원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임원은 은행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외부의 힘에 의해 임원이 되면 그들의
행동반경은 좁아질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 은행인사에 외부의 간섭을 배제해야한다. 그러나 만일 은행
스스로가 선정한 사람이 국민경제와 신용제도의 지탱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될때 중앙은행에서 임원선임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장치도 생각해볼수
있다.

그런데 현재 인사자율화 소리는 높으나 은행임원후보를 추천하고 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명시적인 선임기구가 없는 상태에서
은행인사자율화를 내세우고 있으니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측면마저
있다.

나라마다 은행임원을 선임하는 방법은 다르다. 어느 나라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은행임원이 밀실에서 결정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은행에서는 누가 성실하고 누가 유능한지를 안다. 그래서
은행조직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순리대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인사자율화라는 것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한다는 것이지
모든 임원을 은행내부의 승진으로 메워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일뿐이다.

형식적으로는 자율화를 내세우면서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건
결코 발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