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릴 예정이던 부실감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선고가 오는
23일로 연기됐다.

담당재판부인 서울민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이 사건의 선고결과가 미칠
사회적 영향이 큰 점을 고려,좀더 심사숙고하기위해 재판장 재량으로
선고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상장기업의 연쇄부도사태가 나던 지난 91년12월16일 상장회사 흥양의
주식을 부도전에 매입했던 손장식씨등 투자자 6명은 이 기업이 허위로
작성한 90년 결산보고서를 부실감사한 경원합동회계사무소의 박연순대표와
한성연감사실무책임자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었다.

이 소송은 증시사상 처음으로 상장기업의 회계조작에 대한 부실감사의
책임을 물어 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됐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돼왔다.

현재 재판부의 고뇌는 원고(투자자)에게 승소판결을 내리든 패소판결을
내리든 그 결과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클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원고가 승소해 피고측인 공인회계사가 투자자의 피해를 배상하게 된다면
다른 피해자들의 손배청구소송이 러시를 이룰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91년7월 부도가 난 흥양의 결산보고서에 대한 경원회계사무소의
부실감사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고 주식을 매입했다가 이회사의 부도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수는 손씨등 6명외에도 2천7백82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흥양과 사안의 성격이 같은 기온물산 케니상사 금하방직
아남정밀 신정제지등 부도가 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30여개 회사의
소액주주가 19만8천8백여명에 달하며 한투 대투 국투등 3대투자신탁회사가
보유한 이들 기업의 주식도 수십만주에 달해 공인회계사를 상대로 한
미증유의 대규모 집단손배청구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대상을 부실감사를 한 회계사에 그치지
않고 애초에 결산보고서를 조작한 기업주와 상장된지 1년도 안돼 부도가
발생한 기온물산과 신정제지의 기업공개주간사를 각각 맡은 대우증권과
대한증권까지 확대할 경우 사회적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질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원고에게 패소판결을 내려 회계사가 부실감사를 해도 피해를 입은
투자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하면 법원이 부실감사를 용인하는
꼴이되는 것도 고심한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91년12월 소송이 제기된 이후 1년여동안 원고측과 피고측은 법해석을
둘러싸고 법원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벌여왔다.

피해자인 원고측은 손해배상근거법률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17조,증권거래법 1백67조,민법7백50조를 들고있다.

외감법은 "감사인이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감사보고서를 기재하지
아니하거나 허위의 기재를 함으로써 제3자에 대하여 손해를 발생케 한때 그
감사인은 제3자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증권거래법은 이 조항을 준용하고 있고 민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한다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수 있게 되어있다.

원고측은 증권관리위원회가 부도가 발생한 상장기업이 결산보고서를
조작했으며 외부감사기관으로서 이를 공정히 감사해야할 의무가 있는
회계법인이 이를 묵인했다고 해당기업과 회계법인을 제재한 사실을 증거로
제시했다.

흥양의 경우 5억4천4백만원의 흑자가 났다고 결산보고서를 작성했으며
회계사는 이를 적정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증권감독원의 감리결과
87억3천9백만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원고측은 기업이 이처럼 조작하고 회계사가 묵인한 결산보고서나
이를 인용한 투자자료를 믿고 주식을 샀다가 피해를 입은 투자자는
손해배상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인 회계사들은 결산보고서가 조작됐다 하더라도 원고들은
이결산보고서를 보지도 않았으며 이들이 주식을 산 시점이 흥양의 부도설이
증시에 나돈 뒤라 회계사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피고측은 회계조작을 한 기업의 부도로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의 책임은 회계장부를 조작한 기업주가 더 크지 이를 부실감사한
회계사는 책임이 거의 없다는 논리를 편다.

피고측은 외감법의 법조문에는 회계사가 불특정다수의 피해자에게
무한책임을 지는 것처럼 되어있으나 회계사가 져야할 책임의 범위는
부분적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회계사는 책임이 없고 책임이 있다면 애초에 결산장부를 조작한
기업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번 소송을 묘하게 만든 요소는 이미 형사고발된 흥양의 기업주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에게 1천만원가량의 합의금을 준 사실이다.

피고측은 원고들이 이미 기업주를 통해서라도 피해금액(2억1천만원)의
일부를 배상받았으므로 회계사의 민사상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다.

아무튼 이번 소송의 결과는 기업의 장부조작과 회계사의 부실감사로
점철된 우리나라 기업회계풍토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시험대가 될것으로
보여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안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