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이었다. 두 사나이가 마주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 사람은 몸집이 장대하고 유들유들하게 살이 쪘으며,다른 한 사람은
작은 편인 체구에 깡마른 얼굴이었다. 매우 대조적이었다.

"자, 아다리" "자" "또 아다리" "허허! 이거 또 죽게 되나" "도리없지
뭐" 깡마른 사내가 한수 위였다. 백을 쥐고 있다.

비대한 사내는 몰려서 또 잡히게 되어 버렸으나 초조해 하거나 못마땅
해 하는 기색이 없다. 그저 커다란 두 눈을 두어번 끔벅거리더니 오히려
싱그레 웃음을 떠올린다. 져도 도리가 없지, 하는 그런 체념의 웃음이다.

깡마른 사내는 죽은 흑의 바둑알을 집어 내면서 "이이나오스케가 어쩔
려고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어"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글쎄 말이야"
비대한 사내의 음성은 굵다. 그러나 부드러운 저음으로 대답한다.

"이렇게 나가다간 나라가 몽땅 서양놈들 손아귀에 들어가 버리는 거 아
닐까?"
".."
"형 생각은 어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되지"
"물론이지. 그러나 이이나오스케란 놈 하는 짓을 보니 자칫하면 그렇게
될것 같지 뭐야. 그놈이 대로가 되더니 글쎄 불과 반년도 안되는 동안에
미국 영국 러시아 화란 불란서 다섯나라와 통상조약을 맺었잖아. 그렇게
자꾸 서양놈들 요구를 들어주면 나중에는 결국 어떻게 되느냐 말이야"
".."
"나오스케란 놈이 나라를 팔아버리고 만다니까. 그놈 배짱이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뭐야"
"글쎄,그러기 전에 막부를 쓰러뜨려야 된다니까"
"음! 그게 쉬울까? 쓰러뜨리기는 고사하고,모두 도망치느라고 정신이
없잖아. 형도 쫓겨서 도망오지 않았느냐 말이야"
깡마른 사내는 차츰 더 열을 올린다.

"자,아다리"
그가 지껄여대는 동안에 이번에는 비대한 사내가 백을 몰아붙이기 시
작한다.

비대한 사나이는 사이고다카모리(서향융성)였고, 깡마른 쪽은 오쿠보도
시미치(대구보리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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