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정부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새정부출범을 40여일 앞둔
14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국정평가종합보고회를 가졌다. 이날 모임은
노태우대통령 집권5년의 결산과 같은 것이다.

5년전 노태우정부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선진화지속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출범했다. 이러한 사명이 어느정도 달성되었는가. 과거에
대한 평가는 여러각도에서 가능한 것이고 또 어떤것은 후세사가들에
맡길것도 있다. 그러나 우선 지난 5년의 경제성적은 어떤가.

경제성적은 5년전과 지금의 경제실적을 비교하는 것으로만 평가되는게
아니다. 각종 경제지표의 추이를 살펴보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제를
어떤 정책의지를 가지고 어떻게 관리했느냐를 살펴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표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공이 있는가 하면 과도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경제지표를 단순히 비교해 보더라도 성장률은 둔화됐고 국제수지는
큰폭의 흑자에서 90년이후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단지 물가는 극심한
불황을 반영하여 약간 개선되었을 뿐이다.

흔히 노태우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있어서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이전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민주화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거둔
경제실적은 성공적이라는게 정부당국자의 자평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경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합리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합리성과
일관성을 잃으면 이미 경제정책은 실종된 것과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민주화과정에서 각 경제주체들의 무분별한 욕구가 터져나왔다 하더라도
정책당국은 이를 적정선에서 제어했어야 했다.

경제문제는 자원의 제약이라는 조건하에서 풀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시급한 과제가 있더라도 국민경제가 감당할수 있는 능력이상의 대처는
바람직하지 않다.

주택200만호 건설은 노태우정부의 공약사업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앞당겨
달성되었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이를 성공적인 경제실적의 대표작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인력난은 심화됐고 인건비가
뛰었으며 자재난으로 물가는 부추겨졌고 무역적자도 늘어났다.

따라서 주택200만호 건설은 주택난완화와 주택가격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보다 그 부작용이 크게 부각되고 말았다.

금융실명제파동도 정부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했다. 실명제를
실시할 여건이 되어 있는가,그 부작용은 어떤것이며 또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하는 점에 대한 검토도 없이 금융실명제 실시준비단까지
발족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실시가 연기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어리둥절할수 밖에 없었다.

한국경제는 여러부문에서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성장잠재력이
잠식되었다. 그것은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위축된데 따른 결과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기조는 자주 바뀌었다. 경제여건이나 구조에 대한 진단과
분석없이 여론이나 사람에 따라 정책기조가 바뀐것이다.

때로는 성장이 강조되다가 때로는 긴축이 강조되는등 냉온탕식으로
정책기조가 변경되어 기업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활동에 매달리기가
어려웠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기업은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보다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기업의욕을 떨어뜨린 또 다른 요인은 정부와 재계와의 마찰을 들수 있다.
이른바 신산업정책이란 용어가 이따금씩 튀어나와 이것이 재벌해체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해명을 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이는 불필요한 국력소모에 다름 아니었다.

성장도 중요하고 안정도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개혁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것 하나도 정책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상실하면 이루어낼수
없다. 더욱이 우리가 지난 5년의 경제운용을 되돌아보면서 강조하고자
하는것은 경제각료를 너무 자주 교체했다는 점이다. 잦은 경제각료의
경질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수 없게 만들었다. 1년이상 재임하면
장수장관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거기에서 무슨 일관성을 기대할수
있었겠는가.

지난 5년간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생활이 향상된것을 애써 눈감고자
하는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87년의 3,110달러에서 92년에는
6,700달러로 배증된것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경제지표의 비교를 통해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식의 자기만족에 도취해
있을 단계는 지났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경제관리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노태우정부의 경제정책을 모두
평가하기는 물론 아직 이르다. 그러나 경제는 경제논리에 따르지 않을때
주저앉을수 있다는 매우 값진 교훈을 우리는 배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