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1인당 GNP 92년 6,700달러로
무리한공약.정책실패로 주름
재계와 갈등심화..기조갈팡질팡 국민신뢰 잃어

격동의 6공이 막을 내리고 있다. 집권 5년을 마무리짓고 차기정부에 대한
인계작업이 한창이다.

정부가 14일 새대통령의 취임을 한달남짓 앞둔 시점에서
"국정평가종합보고회"를 가진것은 6공국정의 사실상 마감을 뜻한다.

돌이켜보면 6공의 집권5년은 격동의 연속이었다. 정치적 민주화의
진통속에 경제논리가 정치적주장에 압도되면서 경제는 더 심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6공경제를 평가한다면 몇점일까. 역사적인 평가는 훗날 사가들이 보다
정확히 내리겠지만 분명 잘한것이 있는가하면 잘못한것들도 많다.

6공이 출범했던 88년의 경제상황은 우리경제의 절정기라 할만하다. "3저
호황"에다 계속된 풍년으로 성장 물가 국제수지등 이른바 "세마리토끼"가
모두 잡힌 때였다.

당시정부는 이러한 경제적 호조건을 기반으로 귄위주의청산등
민주화개혁을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또 경제적으로도 분배구조의
개선,경제의 질적향상및 복지향상등 경제민주화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는 92년에 국민총생산을 세계15위권으로 늘리고 1인당GNP는
6천달러이상으로 높이며 수출실적 9백억달러로 세계10대교역국으로
만든다는 경제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도입
전국민의료보험 국민연금제 주택2백만호건설등도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공약사항들이었다.

6공초기에 표방했던 이같은 국정목표와 공약은 대부분 달성됐다는게
현정부의 자체평가다.

지난 5년간 연평균 8.5%내외의 실질성장을 이룩해 1인당 국민소득이
87년의 3천1백10달러에서 92년에는 2배이상인 6천7백달러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민총생산규모도 91년현재 2천8백8억달러로
세계14위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민주화과정에서 각계의 욕구와 갈등이 분출하는등 적잖은 대가를
치른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실적은 "성공적"이라는게 정부측 평가다.

과거와는 달리 세계경기가 침체기에 있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5공이 흑자관리에 소홀히함으로써 넘겨받은
짐이 경제정책수행에 차질을 빚었던 점도 간과할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주택2백만호건설등 무리한 공약을 이행하느라 경제전반에 깊은
주름살을 새겨놓은 것은 아무리 뜯어보아도 좋은 점수를 줄수는 없다.
경제는 실적이 말해준다. 지난5년동안의 경제지표를 들춰보면 6공들어
우리경제에 어려움이 가증돼왔다는 평가를 내릴수밖에 없다.

주요 경제지표를 단순비교해 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난다. 6공첫해인
88년에 성장률 12.4%,물가 7.1%,국제수지흑자 1백42억달러를 기록한데
비하면 92년엔 물가만 4.5%로 개선됐을뿐 성장과 국제수지면에서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게 사실이다.

성장률은 89년 6.8%,90년 9.3%,91년 8.4%에서 92년엔 5%선으로
뚝떨어졌다. 우리경제가 이대로 주저앉는게 아닌가하는 우려감마저
불러일으키고있다.

국제수지를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이 우열이 가려진다. 흑자관리가
미숙했던데다 과소비와 수출부진이 겹쳐 89년 51억달러의 흑자에서 90년
22억달러적자 91년엔 87억달러적자 92년 45억달러적자등 3년연속
적자행진이 이어지고있다.

경제지표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실책이 적지 않다는게 더큰 문제다.
기업의 투자마인드를 위축시켜 미래의 성장잠재력과 경쟁력이 약화됐다는게
대표적인 지적사항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꺼리고 중소기업의 부도사태가 터져나오는
상황에 이른것도 따지고보면 "정책실패"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우선 빈번한 정책기조의 변경을 들수있다.

지난 5년간 경제팀이 바뀔때마다 "성장위주"와 "긴축기조"를 번갈아가며
정책기조로 바꿔왔다. 더구나 이러한 정책기조가 경제여건이나 구조에
대한 정확한 진단없이 여론이나 사람에따라 바뀜에 따라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는게 전반적인 평가다.

노정권 최초의 경제팀장인 라웅배부총리는 여소야대의 출범으로 이렇다할
정책을 펴지못한채 물러났으며 조순부총리도 경기침체속에 성장론에 밀려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이과정에서 개혁정책은 흐지부지됐고 흑자관리의
미숙으로 국민들의 소비수준만 높아졌다.

이어 등장한 이승윤부총리는 경기부양책을 폈으나 내수경기과열만
초래했을뿐 경쟁력강화에는 실패,수출증가율이 2%대로 곤두박질치기에
이르렀다.

마지막 최각규경제팀은 경기과열의 후유증인 인플레와 국제수지적자를
수습하느라 2년째 고집스레 안정화시책을 펴왔으나 "너무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물론 최근들어 물가가 눈에 띄게 안정되고 국제수지적자폭이 줄어들긴
했다.

그러나 정책기조가 일관성없이 갈팡질팡하는 탓에 6공 5년간의 경기변동은
어느때보다도 심했다. 장기적인 투자전략을 세울수 없었다는게 기업들의
하소연이었다.

기업의욕을 꺾어놓은 또다른 요인으론 정부의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의
추진에 따른 재계와의 마찰을 꼽을수 있다. 대기업그룹의 과다한
부동산보유를 막기위한 "5.8대책"은 투기억제라는 당위성에밀려
초법적조치라는 평가를 받았고 재벌해체등을 겨냥한 신산업정책의
구상등으로 재계와의 갈등증폭은 물론 불필요한 국력소모를 초래했다는게
경제계의 시각이다. 더군다나 경기가 침체일로를 걷는 시기에 이같은
정책이 터져나옴으로써 기업들이 더욱 움츠러들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개혁의지는 나무랄바없으나 역효과가 너무 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무리한 공약과제를 실천하느라 빚어진 부작용도 적지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택2백만호공급과 신도시건설이다.

동시다발적인 투자로 인력난과 물가불안을 야기시킴으로써 주택난완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는 퇴색하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한채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

"실명제파동"이 바로 그것이다.

89년4월 "금융실명제 실시준비단"까지 발족됐으나 3당합당으로 무산되고
만 것이다. 결국 하지도 못할 "실명제실시발표"로 주가만 폭락시킨 꼴이
됐다.

급기야 "12.12조치"라는 긴급처방으로 투신사에 2조7천억원에 이르는
주식매입자금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을 살리기는 커녕
두고두고 "증시의 발목을 붙잡는 화근"이 되고 말았다.

주택 2백만호 건설에 따른 부작용과 "실명제파동"이 남긴 교훈은
차기정부도 새겨둬야할 대목이다. 무리한 공약추진에 얽매이다가는 경제에
주름살만 줄뿐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공과를 뚜렷이 가려내기가 어려운 정책도 없지않다. 6공이
전격적으로 추진했던 북방정책이 대표적인 경우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등 과거 공산권의 거의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어
외교공간을 넓히고 경제활동영역을 확대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막대한
차관제공으로 지나친 대가를 치렀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도 현재 시행중이거나 앞으로 시행할 정책에 대해서도 이시점에서
평가하는 작업은 자칫 섣부른 판단이 되기 쉽다. 그러나 차기정부가 6공의
"공"을 살리고 "과"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6공정책의
득실을 차근차근 따져봐야할 때임에 틀림없다.

[면 종] 3면 종합해설
[저 자] 박영균 기자
[사 진] 노태우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평가보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표 ] 6공 경제지표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