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경제운용방향을 정하는 일이 지금 화급하면서 한편 몹시 어려운
과제가 되어있다. 지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수단을 개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부차적이다. 그에 앞서 먼저 내년
경제운용의 기조,구체적으로는 성장과 안정가운데 어느쪽에 더 비중을
둘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지금 몹시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는것이다.

물론 이것은 둘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지,혹은 한가지를 희생해서
다른 하나를 취하는 것과 같은 2분법적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
경기논쟁이 벌어질때면 으레 그런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없지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강약과 완급,뉘앙스의 차이는 있으나 한결같이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만 경제활성화대책을 쓸것이냐
말것이냐,쓴다면 어느 정도로 할것이냐를 두고 입장이 엇갈려 있다.

정부의 경제팀은 엊그제 이 문제와 관련해서 경제안정기조를 유지하면서
설비투자촉진과 기술개발활성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안정에 계속 노력하되 제한적인 경제회복노력의 필요성을 말한 것으로서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신경제"구상과의접목 필요성을 의식한듯한
인상이다. 이 구상은 "앞으로의 경제시책은 성장잠재력의 강화를 통하여
성장과 안정을 조화시켜가는"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현재의 경기상황으로보
분위기전환차원에서 일단 성장쪽에 무게를 싣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때에 공개된 한은의 입장은 퍽 주목되는 한편으로 미묘하다. 한은은
안정과 구조조정노력의 지속필요성과 함께 경기부양책불가론을 제기했다.
그래야할 근거로 한은은 올 4분기 성장률이 3.6%로 완만하게나마 3분기
(3.1%)보다 약간 회복되고 내년에는 올 연간추정치 4.9%보다 나은 5.8%의
성장이 기대되는데 반해 물가가 농수산물과 공공요금 인상압력등으로 금년
(4.5%)보다 높은 5.3%나 오를 위험이 있는 점을 든다.

한은측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89년의 저성장(6.8%)을 조금만 더 인내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않기 때문이다. 현 한은총재는 바로 당시
정부의 경제팀장으로 안정 우선정책을 펴다가 이듬해 3당통합이후
성장우선론에 밀려 퇴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경기가 침체의 정도를 넘어 냉각되어 있고
투자의욕 기업의욕이 완전히 사라진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저상되어있다.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일은 고사하고 이러고서는 안정과
구조조정자체가 어렵고 민생과 사회안정이 위협을 받을 위험이 있다.

굳이 경기부양이니 성장우선이니하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과
제조업 수출중심으로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촉진할 금리정책과 통화관리
산업정책이면 된다. 신구경제브레인들의 어렵지만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