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껏 모임의 성격을 띤 것이라면 회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단 한군데 일주에 두서너번 나가는 곳이 있는데 장안평에 있는 한얼검도
교실이다. 한얼검도관의 유재주 관장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나역시
그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글쓰는데 많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하늘밑에 새로운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모르면 배우고 알면
가르쳐주는 그런 도움이다.

내가 나가는 걸 동호인모임이라고 한다면 나는 단 한군데 모임에 나가는
셈이다. 동호인모임이라는 말을 해놓고 보니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서너해 동안 서로 죽도를 맞대고 우정을 다져온
검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호구를 쓰고 죽도를
들면 산같이 느껴지는 이창운사범(4단)과 여자검객 이민정(3단)씨,그리고
다리가 아프다면서도 범같이 덤벼드는 김석씨,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검도를 시작한 것은 세해전 겨울이었다. 기관지가 약해 겨울에
감기를 달고 다니는데다,장도 약해 늘 설사를 달고 다니던 시기였다.
직업이 글을 쓰는 것이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딴에는 해소방법이라고 술과 담배를 너무 가까이한 뒤끝이었다.
게다가 나는 타고나기를 약골로 타고 났는지 독감이 유행한다 하면 집에서
가장 먼저 걸려 식구들에게 옮기고는 했다. 또 마음도 약해 험상궂은
얼굴의 사람만 봐도 그사람과 내가 가진 힘의 비교도 없이 겁부터 먹었다.
그러니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자신감이 없으면 용기도 없는 법,길을
가다 약한 여자가 건달들에게 희롱을 당해도 나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얼른 피하고 보는 좀팽이 중의 좀팽이였다.

그러던 내가 죽도를 들고 부터는 뭔가 달라졌다. 검도교실에 나가다 보니
자연히 술을 마시는 횟수가 줄어들었고,목욕탕이나 이발소에가 누워 있던
버릇이 차츰 고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묘한 일이 생겼다.
예전에는 글을 한 이틀 쓰고나면 머리가 깨어질것 처럼 아프고 짜증스럽던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깨끗이 나은 것이 그것이다. 도장에 들어갈 때는
얼굴을 찌푸리고 들어갔다가,나올 때는 마치 엄청난 고민이라도 해결한
듯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나온다고 의식한게 수십번이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검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운동에 재미를 붙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일이었다.

세상의 이런 저런 숱한 동호인 모임중에서 누구든 자신이 관계하는 모임이
가장 소중하겠지만,내가 체험한 것 중에서는 운동을 하여 건강도 다지고
우정도 다지는 모임이 좋을 듯하여 이 모임은 계속하여 나갈 작정이다.
건강은 건강할때 지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아직은 괜찮은데 더 있다가
하다보면 세 계단만 올라가도 숨이찰 나이가 될 것이니까. 한가지 바랄
것이 있다면 성균관 대학교의 성무회 같이 내가 나가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을 오래도록 보는 것이다. 그래야 동호인모임이라는 말에 어울릴
것이니까. 서로가 다른 직업 다른 생활습관을 가지고도 계속될수 있는
동호는 많지만 내게는 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