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밑이 닥친다. 거리엔 십자군의 자선 냄비가 등장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도 부산하고,목덜미가 으스스하다. 김장철인데도 비가
을씨년스럽고,세상사가 자꾸만 비비 꼬이는듯만 싶다.

빙 크로스비의 걸쭉한 화이트 X마스가 귓가를 맴도는 빗줄기 속에 대설도
지났다. 완연한 겨울 속으로 무궁동의 세월이 잠겨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말연시를 맨먼저 알리는것이 년하장이다. 넉넉지 못한
생활속에서도 항상 푸짐한 것이 달력과 연하장 인심이었다. 그러던것이 올
겨울엔 궁상이 끼였다. 한동안 과소비를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터에 무슨
죄닦음이라도 치르는 기분이다. 쓸데없는 허례허식과 낭비는 정신의
뿌리를 좀먹는다. 에너지절약과 생활의 근검은 몸에 배어야만 한다. 그건
결코 일과성으로 끝내선 안된다.

벌써부터 카드와 연하장이 쌓이기 시작한다. 한창 대선쪽에 쏠린 관심
덕분에 아직은 뜸한 느낌이지만,가만 놔두면 올해라고 다를게 없을성 싶다.
카드나 연하장은 받아서 기쁘긴 하지만 결국은 부담이다. 받고서
안보낸다면 우선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감사와 우정의 표시도 좋지만
제발 연하장 적게 보내기나 안보내기 운동이라도 벌어졌으면 좋겠다.
자원낭비와 집배원의 수고, 우편물의 폭주때문에 생기는 행정마비등 그
부작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규격봉투에 짧고 알뜰한 내용들이 정초
한날한시에 배달된다. 누가 더한것도 없고 덜한 것도 없다. 그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거나 마음을 쓸 필요도 없다. 우리쪽은 규격 다르고 내용
다르지,생소한 사람마저도 여기에 가담한다. 연하장 몸살로 주눅이 들
지경이다.

특히 새해가 밝으면 각종 물가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편물
전화료 지하철 버스 각급학교납입금등이 한꺼번에 고삐가 풀릴 모양이다.
뭉그적거렸다가 싹둑 인상의 고삐를 풀어버리는 것이 지금까지 해온
물가당국의 행정편의주의다. 야단났다. 제아무리 시장경제의 원리를
바닥에 깔았다고는 해도 과정의 조정과 경영합리화의 묘를 살려야
할것이다.

이런때 슬쩍 국회의원들의 세비만을 14. 3%나 올렸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얌체족이다. 연하장이 갖는 가장 큰 덕목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다. 그것을 꼭 안보낸다고해서 마음까지 인색한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