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서민용 식당에서 한 손님이 전통적인 시골음식인
보르시치(감자와 고기로 만든 수프)를 주문했다. 한참만에야 종업원이
식탁위에 놓고간 수프를 먹으려던 손님은 얼굴을 붉히며 식당지배인을
호출했다. 수프의 표면에 톱밥이 어지럽게 떠 있었기 때문이다.
느린걸음으로 다가온 지배인을 향해 손님은 "이 수프위에 떠다니는 톱밥은
어찌된것이냐"고 호통을 쳤다.

지배인은 화가 채 가라않지도 않은 손님을 뻔히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되받았다. "손님,기껏해야 2루불50카페이까 싸구려 수프를 주문해놓고
톱밥이면 충분하지,그럼 기둥감 재목을 기대했습니까"라면서 제자리로
되돌아거 버렸다.

러시아인들이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면서 러시아인 "기질"로 소개하는
기담(Anecdote)의 한 토막. 러시아인들의 타고난 억지 근성은 알아주어야
한다는 그들 자신의 소개장 같은 것이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모처럼 방한하여 "정중하게" 노태우대통령에게
전달한 KAL기의 블랙박스(Black Box)는 한낱 빈깡통임이 드러났다. 거창한
전달식을 행하면서 가해자인 러시아측 대표들은 오히려 당당한 거드름을
피웠고 피해자인 우리측대표들은 황송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내용물이 있는지 없는지의 확인작업이나 전달물의 리스트하나없이 받아 쥔
우리의 모습은 톱밥투정이나 하는 레스토랑의 손님신세로 전락하고 만셈.

알맹이 없는 빈통을 전달하고 모스크바로 개선군처럼 귀환하면서
옐친일행이 비행기속에서 외쳤으리라 믿어지는 "하랏쇼"의 함성이 귓전을
때리는 기분이다.

러시아인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한 방법으로 빙판위의 사우나파티를
열곤한다. 손님과 함께 전나의 모습으로 사우나에서 몸을 익힌다음 영하
25도의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타와이! 타와이!"외치면서 맨발로 설원을
30여초 뛰면 감각이 마비된다. 사우나에 들어와 몸을 익힌다음 다시 영하
25도의 빙판위로 뛰어나간다. 4~5차례 극한상황을 왕복하는 융숭한 접대가
끝난다음 독한 보드카의 순배가 시작된다. 발가벗는 나신으로 영하 25도의
추위속에서 다져지는 슬라브민족의 끈덕짐과 두터운 피부(후안)를 이제부터
좀더 깐깐하게 연구해야할것같다. 그래야만 최소한 톱밥신세는 면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