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난지 꼭 20년만에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갔다. 며칠전부터 나는 설레는 마음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고
영혼 깊은 곳에 서려있는 유년의 추억을 하나씩 끌어올리며 그 아련한 맛을
즐기느라 나의 얼굴은 나도 모르는 새 빨갛게 상기되어 있곤 하였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탁월한 상상력 이론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고향은
그때 나에게 더이상 형태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차라리 살아 숨쉬는 물질의
힘으로 파고들며 나를 몽상의 시간으로 이끌어갔던 것이다.

나는 그 몽상의 시간을 즐기며 직접 자동차를 몰고 넉넉한 마음으로
고향에 도착하였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돌아보고 연필과
공책을 사쓰며 가끔씩 군것질을 하던 구멍가게들도 기웃거려보았다.
그리고는 자동차를 서서히 몰아가며 송사리를 잡던 시냇가와 등하교길을
살펴보았고 적당한 자리에 자동차를 세워놓은후 뒷산에 올라가 내가 살던
마을을 감격으로 굽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웬 일인가. 나는 그 뒷산에서 어린 시절의 한가지 추억에 발목을
잡혀 그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십리나 되는 국민학교를
두발로 걸어다니던 기억과 읍내에 있는 20리 길의 중학교를 역시 두발로
걸어다니던 기억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등하교길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중학교 과정의 1년반동안을
자전거로 통학하던 기억이야말로 나를 후끈하게 달아오르도록 만들며 나의
마음을 지배하였다.

나는 자전거를 아주 잘타는 편이었다. 친구들을 자전거 앞뒤칸에
태워다주는데도 익숙하였고 체육대회날 자전거타기경주를 하면 작고 보잘것
없는 몸집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등을 도맡아 하였다. 힘들게 고갯마루를
올라간 후라면 그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페달 한번 밟지 않아도 스키
타는것 이상의 황홀함을 느끼며 언덕길을 달려 내려올수 있는 그
자전거타기의 매력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기에 불가능한
서울생활속에서도,나는 자전거만 보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느새 과거의
추억속으로 혼자 빠져든다.

이런 추억을 갖고 그것을 떠올리고 있는 터라 직접 자동차를 몰고 고향의
시골 길을 달리는동안 나는 내가 탄 자동차가 그 소박하고 평화로운
고향길에 어울리지 않는 이단자의 탱크나 사치스러운 이물질처럼
느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길을 다녀야 했기에
어쩔수 없이 서울에서부터 몰고온 자동차이긴 하지만 나의 자동차가 내는
엔진소리를,할수만 있다면 보자기로 덮어서라도 그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하고싶을 정도로 나는 자동차가 그 시골길에서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이처럼 나는 자동차 애호가 측에 끼이질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적어도 4번이상 직장때문에 고속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장거리를
달린다. 그러므로 그 누구보다도 교통체증과 교통사고와 자동차로 인한
엄청난 공해를 절감하며 그것의 극복책을 따져본다. 물론 세계적으로
일년에 약25만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약3백만명이 중상을 입는다는
통계치를 들먹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 숨막히는 자동차 행렬을 조금이라도
반성적인 눈으로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속에서 관리불능의 위기감을
실감하고 전율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필요악과
같은 자동차 문제를 극복할 방안은 없는 것인가. 교통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직관적인 제안밖에 할수가 없다. 하지만 산업화와 기계화에 대한
절대신앙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나는 자동차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구체적인 극복방안의
하나로 "자건거를 타자"고 제안하고 싶다. 자전거는 인류가 만들어낸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공해가 없는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앞에서 자전거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추억을 떠올린 것도 이 제안과
관련이 있거니와 폭력적인 자동차의 노예가 되느니보다 얌전한 자전거의
주인이 되는 것이 어떨까. 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자동차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시내를 달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보면서,그런가 하면
횡단보도와 인도 사이의 턱을 없애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필요한 곳마다
만들어 시민들로 하여금 자전거를 펀하게 타도록 유도한 일본의 도시를
보면서,자동차 문제를 극복할수 있는 한 방법이 자전거타기를 통하여
이루어질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확인했다. 도로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와 시민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