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차기 정권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그것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진정한 지도자상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때마침 "11월의 인물"로 선정된 도산 안창호의 인물 됨됨이는 지도자상의
귀감으로서 시사해 주는바 크다.

교육자 인격자로서의 족적도 남다른바 있지만 근대한국이 낳은 가장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민족지도자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에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이여!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의 원수는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했으니 내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1938년 옥환으로 보석 입원중 순국할 때까지 60평생을 오롯이 허와 위가
아닌 진과 정을 몸소 실천한 그였다. 그의 교육관이나 도덕관,민족관이나
역사관도 바로 정직과 성실의 바탕위에서 꽃피워진 것이라 할수 있다.

독립운동과정에서 그가 남긴 몇가지 일화에서도 실천적 인격의 고귀함이
찾아진다.

재미망명시절인 1905년 노일전쟁이 끝나고 포츠머드강화회의가 열릴때
교포들은 그에게 민족대표로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다.

"나는 안간다. 우리가 참석할 권리가 없으니 아무리 애써도 십중팔구는
참석 못할 것이 뻔하다. 이것을 알면서도 동포들의 땀으로 모은 돈을 쓸수
없다. 국제무대 구경도 하고 새 양복도 한벌 얻어 입는 맛에 헛된 돈을
써버리면 후일에 참으로 돈을 써야할 일이 생길때 누가 돈을 대겠는가"
모은 돈을 하와이친목회에 되돌려 보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승만은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교포들이 피땀흘려
번돈을 가지고 그 회의에 참석했다.

1919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될 때에도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대신에 이승만을 앞세웠다.

그는 "나"보다 "너","우리"를 언제나 먼저 생각했던 참된 공인이었다.
사리사욕에만 매달리는 현대인들,철학이 없이 권력추구에만 집착하는
오늘의 지도자들에게 그의 족적은 어떻게 비춰질까.

"긴 달이 늦도록 생각하고/깊은 밤 들도록
생각함은/우리나라로다/우리나라로다"도산의 마음을 되새겨 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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