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오일뱅크가 충남 대산공장에 마련한 바이오 디젤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고 18일 발표했다. 향후 바이오 항공유, 바이오 선박유 제조 설비도 갖춰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한다는 전략이다. 4만㎡(약 1만2000평) 규모인 이 공장은 연 13만t의 바이오 디젤을 생산한다. 바이오 디젤은 팜유, 팜 잔사유(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름), 폐식용유를 비롯한 동·식물성 기름 등으로 만든 연료다. 디젤만 썼을 때보다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선 디젤에 바이오 디젤 4%를 의무적으로 혼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비율은 2030년 8%로 높아진다. 그동안 바이오 디젤을 매입해온 HD현대오일뱅크는 공장 가동으로 일부를 자체 조달할 수 있게 됐다.HD현대오일뱅크는 이 공장에 국내 최초로 초임계 공정을 적용했다. 고온, 고압에서 촉매 없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롯데웰푸드로부터 폐식용유 등 원료를 공급받기로 했다. 이렇게 생산한 바이오 디젤은 롯데그룹 계열사의 운송용 트럭 등에 공급된다.김형규 기자
남매 간 갈등을 겪은 단체급식업체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거졌다.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4남매 중 ‘캐스팅보터’로 꼽히는 장녀 구미현 씨가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왼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구지은 부회장(오른쪽)이 사내이사로 선임되지 못했다.18일 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은 지난 17일 서울 마곡동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그간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장녀 미현씨와 남편인 이영열 전 한양대 의대 교수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주주제안을 가결했다. 오는 6월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구 부회장 측은 구 부회장과 차녀 구명진 씨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올렸지만 구 전 부회장과 미현씨 측의 반대로 부결됐다.비상장사인 아워홈은 구 회장의 1남3녀가 전체 주식의 98% 이상을 갖고 있다. 구 전 부회장이 38.56%, 미현씨가 19.28%, 명진씨가 19.6%, 구 부회장이 20.67%를 보유 중이다. 구 전 부회장과 미현씨의 지분을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이번 주총으로 아워홈의 경영권 분쟁은 세 자매와 장남 간 대결에서 장남·장녀인 구본성·미현씨와 차녀·삼녀인 명진·지은씨의 대결로 바뀌었다. 미현씨는 2017년 전문경영인 선임과 관련해 구 부회장 손을 잡았다. 2021년엔 구 전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해임안을 결의하고 주총에서 선임된 이사 임기 만료까지 세 자매의 의결권을 통일하는 협약을 맺었다. 구 전 부회장은 보복 운전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후 2021년 6월 대표이사에서 해임됐다. 이후에도 여동생인 구 부회장과 소송전을 벌이며 갈등해왔다.구 전 부회장 측은 이번 주총에서 배당 한도를 회사의 제안(60억원·배당률 52.6%)보다 많은 200억
프랑스어로 ‘벨 에포크(La Belle poque)’는 아름다운 시절이다. 대체로 1880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다. 벨 에포크에서 착안한 ‘팝 에포크’는 필자가 지어낸 신조어다. 팝(pop music), 즉 대중음악의 벨 에포크라면 비틀스의 1960년대를, 레드 제플린의 1970년대를, 마이클 잭슨의 1980년대를 떠올릴 수도 있다. 다른 이는 너바나의 1990년대, 뉴진스의 2020년대를 꼽을지도. 당신의 팝 에포크는 언제인가. 베토벤의 1800년대, 말러의 1900년대라고 해도 좋다. 팝 에포크의 팝은 팝 뮤직뿐 아니라 내 귀를 ‘펑!(pop!)’ 뚫어준 환희와 충격의 아름다운 청각 시대를 가리키니까. 팝 에포크는 매번 ‘당신(또는 그들)의 팝 에포크는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리라. 그리고 첫 회 주인공은 장애인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환희와 충격의 아름다운 청각시대1984년 12월 31일 오후, 영국 셰필드 외곽의 자동차 전용도로. 릭 앨런은 여자친구와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즐거움도 잠시. 앞차를 추월하려고 속력을 높인 순간 차는 그만 통제력을 잃고 커브길의 돌담을 들이받은 뒤 차도 밖으로 이탈한다. 차체 밖으로 튕겨 나간 앨런은 그 치명적 사고에서 천운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왼팔을 잃었다.앨런의 삶은 그때까지만 해도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우상향하고 있었다. 그가 몸담은 록 밴드 데프 레퍼드의 일원으로서…. 앨런은 드러머였다. 사고 직후, 그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드러머에게 한 팔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친구들은 없는 길이라면 만들어 질주해 보기로 했다. 앨런만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