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자바의 토인청년들은 아무리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더라도 곧바로
청혼을 하지않는다. 장차 사랑의 보금자리로 쓸 벽을 통처럼 어깨에 메고
그 처녀의 집 문앞에 가져다 놓고 온다. 그 처녀는 결혼할 의사가 있으면
24시간내로 그 벽에다 두개의 구멍을 뚫어 놓는다. 이것은 미래에 "꿈의
보금자리"의 창이 된다. 그러나 그 벽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으면 결혼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청년은 그 벽을 다시 가져간다. 다음의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남녀가 결혼을 하기 이전에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나라에 따라,또 종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우리도 개화 이전에 선보기(간선)라는 것이 있었다. 혼인 당사자들의
부모나 친척들이 상대방 후보의 사람 됨됨이나 가풍 가통이 어떠한가를
살핀다. 혼인 성사여부의 결정권이 양쪽 가문의 어른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때 그때의 혼인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기 보다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인 셈이었다. 유교적 신분계층을 유지시키고
가문보존을 목적으로 했던 사회의 혼인절차라 할수 있다.

오늘날처럼 맞선을 보는 습속이 생긴 것은 개화 이후의 일이다. 맞선은
결혼후보 당사자들이 마주 앉아서 상대방이 평생의 반려자로서 합당한지
어떤지를 직접 가려 보는 의식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가례를
고수했던 조선조사회에서는 꿈도 꾸어 보지 못할 반윤리적 행위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산업화되고 평등화되면서 맞선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혼인 당사자들의 감정이나 판단이 결혼 성사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양쪽 부모들의 의사나
결정권이 아주 배제되어버린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요즈음에도 혼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맞선과 선이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맞선을 화상회의시스템을 통해 보게 되었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오는 30일 한국통신주선으로 한국농촌 총각과 중국교포처녀
5쌍이 서울과 북경의 위성중계영상실에서 TV화면에 비치는 모습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맞선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먼길을
오가는 수고도 덜고 공중장소에서의 어색한 대좌를 하지 않고도 맞선을
볼수 있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