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흥망과 성쇠,명암과 영욕으로 점철된다. 흥성과 밝음,영광만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지상엔 없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법칙이다.

스페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더라도 많은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영욕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음을 알수있다. 스페인민족의 중핵인
켈트이베리아족- 고대에는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
서고트인들의 지배를 받은데 이어 8세기부터는 800여년동안이나
서양문명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이슬람족(회교도)의 강점하에서 신음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침입자들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 받아 보존해 왔다.
기독교도들의 실지회복운동으로 왕권을 되찾은 15세기이후에 세워진
역사유적들에서도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마드리드 근교의 톨레도,엘
에스코리알,세고비아,라 그란하를 비롯 그라나다등에 있는 궁전 성
교회당의 건축양식이나 문양에서 그 자취들이 역력하다. 다른
유럽나라들과는 너무나 달리 이슬람의 숨결이 확연히 느껴지게 된다.
실지회복후 500여년이 지났는데도 이슬람의 잔재들은 역사로서 여전히
숨쉬고 있다는 얘기다.

스페인인들은 그러한 욕된 역사를 숨기려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과거의 피침과 고통의 역사를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다. 그렇다고
스페인인들의 문화적 주체성이 다른 민족보다 부족한 것은 아니다. 지나간
오욕의 유산들을 보존함으로써 후세를 교육하는 생생한 장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일제36년의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그네들이 남긴
건물들을 마구 철거해 왔다. 독립선열들의 한과 원이 서린
서대문형무소마저 없애버리려다 독립공원으로 기사회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조선총독부청사(현 국립중앙박물관)와 더불어 마지막 일제잔재
건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는 창경궁의 장서각이 연내에 헐리게 된다.
일제가 조선왕조의 기맥을 누르기위해 자경전을 헐어내고 그자리에 그들의
고유건축양식을 본떠 지은 것이기에 그것의 철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건물을 완전히 파기해 버리는 것은 역사교육적 차원에서
재고되어야 할 점이 없지 않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역사란
과거의 족적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판단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