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사설 > 중립내각의 무거운 책무와 과제
정무1장관등 선거관련 4개부처장관이 바뀜으로써 "중립"내각이 출범되었다.
관권부정선거파문으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로 노태우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에 이어 중립을 표방한 현내각이 출범된 것이다. 새 내각은
엄정중립의 위치에서 공정선거를 치러야할 역사적 책임과 사명을 띠고있고
현총리의 취임사와 9일 중립내각출범에 즈음한 대통령의 담화문에서 이점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의 총리인선과 새내각짜는 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갖지 않을수 없다. 첫째 중요한 자리에 앉혀야할 사람을 뽑는
일이 간단할수는 없겠지만 4개월남짓 남은 임기의 내각을 짜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과거에도 늘 그랬지만 어느자리에 누가 임명될 것이냐를 놓고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구체적으로 거명된 인물의 평가도 엇갈렸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과정에서 관가는 술렁이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일을 처리해야할 공직사회의 기강은 흔들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선과정이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과정이 지나치게 길었다.
상황이 달라지거나 책임을 물어야할 일이 생기면 사람을 바꾸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켜야 한다. 그러나 사람만 바꾼다고 일이 풀리거나 발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여망에 부응할수 있는,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는 유능한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구체적으로 묻고 또 그에 상응하는 권한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로 "중립"내각이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 국무총리 자리는 직책만 높았지 정부가 해야할 일을 모두
책임지고 이끌어 갈수있는 실세는 아니다. 헌법에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성"을 띤 국무총리와 각료를 새로 앉혔다 해서
중립내각이 되는것은 아니다. 굳이 중립내각을 출범시키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탈당 그자체가 선거를 공정하게 중립적으로 치를수 있는 바탕이
된다. 또한 대통령이 당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선거를 법에 따라
치르고 관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선거를 치를때마다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대통령임기중 총선 또는 지자체의 각종선거를 치를 때에는 언제나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하는가. 결코 그럴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탈당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르려는 대통령의 의지의 표출이고 그런 선거를 치르기 위한 객관적
여건조성에 큰 뜻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무당적,그리고 중립내각만이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관권선거가 자행되었던 것은 중립내각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니다. 당적을 가진 대통령 재직시 치르는 선거는 언제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 역으로 성립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총리를 포함한 이번의 개각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사리가 그러하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기에 하는 이야기다.
셋째로 국가가 해야할 일은 참으로 많다. 선거를 잘 치르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 강조되어서도
안된다. 지금 세계는 무자비한 우주적경쟁시대에 돌입해 있고 살아남기
위한 국가별 생존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구조를 바꾸어 가는 일은 그 어느것에 못지
않은 중요한 일이다.
이번 개각에서 경제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유임의 뜻은
무엇인가. 경제의 경쟁력기반을 다지는데 더욱 분발하라는 국민의 주문과
기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정치발전의 기반은 경제에 있다. 우리경제,이대로는 안된다는걸
경제각료들이 모를턱이 없을 것이다. 경제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일에
과도기란 없다. 93년2월25일 새정부가 출범할때까지 적당히 자리를 지키면
된다는 생각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경제는 물흐르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물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권은 말할것도 없고 온나라의 관심이 다가올 대선에만 쏠려 있다.
그러나 경제팀은 경제를 구석구석 챙겨야 한다. 지금 일반시중에서는
나라경제를 챙길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새내각은 선거만 공정하게 치르면 소임을 다하는것이 아니다.
한시내각이라 해도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어느 구간을 달리는 선수처럼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따라 신명을 바쳐 일해줄 것을 바란다. 그것은
역사에 바르게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창조해 가야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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