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을 쫓는 눈들이 중립내각의 중립총리인선에 모아지고 있다. 마치
발사를 앞두고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것처럼 정국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공명선거의 만병통치약이 있는것처럼 모두들 기대에
들떠있다. 조선조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재상의 직책은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립 총리인선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도 무리는 아니다.

흔히 국무총리를 "얼굴마담"이라고 속칭한다. 다방은 얼굴마담의
수완에따라 장사가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가의 얼굴마담은 그런
일조차 못했다. 총리의 능력에 의해 국정이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다. 우리가 줄곧 보아온 것은 국정이 나빠졌을때 그 책임을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1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재상직책은 허울뿐인 문책용
벼슬이었다. 대통령책임제 아래서 대통령의 실정책임을 도피시키거나
완화시키는 피난처나 완충지대로 이용된 직책이었다.

성악설의 순자가 왕패편에서 재상과 관련해 언급한것은 지금도
경청할만하다.

"군주의 치국하는 방법은 가까운 데를 다스리고 먼데를 다스리지 아니하며
명백한 것을 다스리고 희미한 것을 다스리지 아니하며.가까운 데가 잘
다스려지면 먼데는 따라서 다스려지고 명백한 것을 다스리면 희미한 것도
따라서 다스려진다.군주는 재상 한사람을 알고 재상은 많은 장관을
선발해서 일을 맡기고 통솔하고 조정의 각 직분을 정돈하며.그러므로
군주는 재상을 구하기가 힘이 들며,쓴 뒤에는 편안하게 쉴수 있는 것이다"
순자의 말이 군주제가 아닌 민주주의국가에서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의해 일정기간 국정의 최고책임을 위임받은
대통령으로서는 책임을 총리에게만 미룰수 없다. 지금은 국민이 군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최후적 국정책임은 누구에게도 전가될수 없으며 이런
틀속에서 총리를 필두로 한 내각은 대통령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함께
움직여야할 내각의 총책임자는 총리이다. 이점에서 총리는 여전히
"재상"이다.

우리의 헌법이나 정부조직법도 순자의 정치사상처럼 총리의 재상적 역할을
규정해놓고 있다. 즉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게 되어 있다. 국무위원의 임면건의권도 갖고 있으며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할 때는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수도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가장
가까운데 있는 총리를 다스리고,총리는 대통령과는 좀 먼데 있고 자기와는
가까운데 있는 행정각부를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유명무실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측근"과 권력부서들이고 재상은 한다리 건너에 있다.
역대총리중 덕망있고 유능한 인사도 많이 기용되었지만 "막힌데를
뚫겠다"고 하면서도 결코 아무것도 뚫지 못하고 물러나기가 일쑤였다.
최고의 벼슬만 주고 권능은 주지 않아 방탄조끼소리만 들었다. 아까운
인재들만 소멸시킨 셈이다.

이래서 헌법구조가 실질적으로는 왜곡되었다고도 볼수 있다.
대통령책임제 자체가 1인지하만인지상 단계에서 무중력의 공백을 빚고
있으니 행정혼란을 자아낼수 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들은 연기군 관권선거가 총리의 책임이라고는 느끼지
않고 있다. 행정구조상 총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할 뿐이지 실제로는
"총리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권력이나 행정의 돌아가는
모양이 재상을 마치 허수아비처럼 느끼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데도
지금 일부 유력인사들은 자천타천으로 높은 벼슬자리에 연연하고
각당에선 이에 영향을 미치려고 공작한다.

요즘 경제문제등 국정의 현안이 산적된 속에서 중립내각의 중립총리만
각당의 의견대로 잘 선정되면 공명선거등 모든 일이 풀리리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는 우리 정치가 얼마나 실질문제에서 겉돌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대통령의 책임이 더욱 강조되어야 하고 권능의 부여로 대통령과
함께 책임질수 있는 재상이 발탁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중립의
의미가 사라진다. 자칫 중립이 책임을 모호하게할 우려도 있다.

우선 대통령에게 더 큰 국정의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 총리인선은 각당의
당략보다는 대통령의 책임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재상후보들은 벼슬만
바라보지 말고 책임과 권능을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얼굴마담으로는
"중립내각"이 중립될수 없고 공명선거나 올바른 행정질서를 이룩할수 없다.
이번 내각구성은 총리가 대통령에 가장 가깝게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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