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도 정부예산안이 확정되었다. 일반회계가 38조500억원으로 올해보다
14. 6% 늘어났고 재정투융자 특별회계를 포함하면 4조7,162억원으로
올해보다 13. 3% 늘어난 규모이다.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손질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정부 예산당국자는 예산의 구조개혁을 시도했고 긴축의지를 가지고
국가경쟁력강화분야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몰아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자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짜여진 예산안은
현실적인 여러가지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고 긴축의지도 퇴색했다고
볼수밖에 없다.

정부가 해야할일,또 필요한 일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가용재원은 한정돼
있다. 바로 이런 점때문에 예산을 짤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합리적으로 책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다 고려하다
보면 결국 전년대비 얼마의 증감에 매달리게 되고 예산안은 예년과 비슷한
모양갖추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한해의 예산을 짜는 일에서 구조개혁의지를 보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건비나 방위비를 대폭 줄일수 없다는걸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정부의 긴축의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내년도 경상 경제성장율(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을 12 13%로
잡았다. 그런데 일반회계기준으로 내년 예산이 14. 6% 늘어났다는 것은
긴축일수가 없다. 더욱이 한국경제는 지금 매우 어려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고통의 분담이고 정부가 떠맡아야할
몫은 최소한 경상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증가율의 예산을 짜는 일이다.

당초 일반회계증가율을 13%로 잡았다가 당정협의과정에서 늘어났고 또
안하겠다던 여러번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추경예산을 편성한것을
보면 선심성 확대예산이라거나 긴축의지의 퇴색이라는 평가는 그 근거가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예산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부분은 경직성경비의
대표격으로 볼수 있는 방위비를 9. 8%밖에 늘리지 않았고 또한 공무원
처우개선은 3%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비증가율을 한자리수 이내로 억제한 것이라거나 공무원봉급 3%인상은
그 자체만 가지고 잘된것이라거나 잘못되었다고 할수는 없다. 단지
우리의 나라사정이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야할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처우가 개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3%에
그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인건비는 기간연장등 자연증가분에 따라
13. 4%나 늘어났다. 이는 비대하진 제 몸집을 유지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예산상 공무원의 증원을 당초계획했던 1만500명에서
3,000명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할 일은
정부의 생산성이다.

흔히 "작은 정부"를 이야기한다. 이는 정부가 해야할 일은 정부가 하지
않으면 민간부문이 할수 없는 일에 한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이 할수 있는 일을 정부가 떠맡을 이유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이런 점을 이제 검토해야 한다.

재정의 역할은 긴축 또는 팽창예산이라는 논의와는 별개로 그 중요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예산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세출구조의
개혁을 통해 필요한 부문으로 돈이 투입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확충이나 중소기업육성등 국가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는
분야에의 투자확대가 그것이다.

이번 예산에서는 사회간접자본확충(22. 2%),중소기업지원(42.
6%),농어촌구조개선(실사업비기준 21%),과학.기술진흥(18%)등
국가경쟁력강화부문의 예산증가율이 높은 점은 평가할 일이다.

또한 농어촌구조개선과 관련,이에 걸림돌이 되는 소득보상적지출이
내년예산에서는 4. 6%나 줄어든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부채경감을 위한 이차보전등 소득보상적지출이 약1조원으로 농어촌지원예산
3조4,700억원의 28%에 달하고 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그러나 소득보상적지출을 농촌구조개선으로
돌려 농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화시대에 살아 남는다.
정부는 이런것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한해의 예산에서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걸맞는 내용의 사업을 다
담을수는 없다. 그러나 예산을 짜고 이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잊어서는
안될 일은 우리가 살아 남기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어야 선심용이라든가 정치의 벽이라든가,하는 말이
예산에 붙어다닐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