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에 약방 감초격으로 올려지는 것이 김치다. 우리의 미각을
떠날수 없는게 김치라는 얘기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의 식생활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상고시대에도 오늘날의 김치와는 다르나 장아찌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무 오이 박속 가지 부추 죽순 마늘등을 소금,술과 소금,술지게미와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무로 만든 동치미와 나박김치 짠지가
개발되었다. 양념으로는 천초 생강 귤껍질등이 쓰였다. 이 시기의 김치에
관한 문헌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중국이나 일본의 것에서 류추된
것이다.

우리의 첫 문헌기록은 고려중엽의 문장가였던 이규보가 남긴 시에서
찾아진다. "무장아찌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되네"라는 구절이다.

조선조중엽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이 배추를 재료로 하거나 고춧가루를
양념으로 쓰지 않았었다. 배추는 17세기말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록"의 기록에 나타나고 고추는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
양념으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추가 임진왜란때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보아 김치양념으로 쓰이기까지에는 150여년이 걸린 셈이다. 그
무렵을 전후로 배추에 산초 파 마늘 생강과 젓갈 낙지 굴등의 해물,밤 잣
대추 버섯이 첨가되는 배추김치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 시기가 김치의 일대 전기이자 혁명기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요리법의 김치가 19세기초 중국으로 건너가 인기를 끌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김치가 53개국으로 한해에 500억원어치나 팔려나가
"세계인의 식품"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만큼 미각의 고유성이
해외에서의 인정받은 것이라 하겠다.

김치산업의 발전이 반가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다. 핵가족화와 아파트문화의 보편화에 따라 내수시장규모가 해마다
20%씩 늘어나 수출시장수준에 이른 것을 보면 주부들의 특이한 손길이 배인
김치맛이 실종되어 버리지나 않을까하는 것이다. 거대한 점포망을 가진
농협이 올해부터 기존 김장김치 예약생산업체들의 판매경쟁에 가세하게 된
것이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까. 주부들의 가사노동부담을
덜어줄수 있는 것인데도 우려를 떨쳐 버릴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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