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마치 어느 소설 제목같지만,이는 존재론적 깊은 고리로
맺어진 핏줄의 인연을 말한다. 소설"카라마조프의 형제""세일즈맨의 죽음"
또는 선우휘의 단편"불꽃"에 이르기까지 부자간의 갈등과 벽이 뚜렷이
묘사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설이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굴절을
내용으로 한"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핵심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명한 교육소설"에밀"을 쓴 장 자크 루소도 알고보면 말썽꾸러기로
고아원에 보낸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어떤 의미에선 그자신이 성공한
아버지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에 걸쳐 좋은 아버지,성공한
아버지란 어떤 것인가.

특히 요즘같이 "거세된 남성시대"에는 한번쯤 골똘히 짚고 넘어가야
할듯싶다. 비록 연약한 싸리울타리일망정 그안에선 큰 기침과 당당함이
새어나오고,소박하면서도 뚝심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옛모습이
그리운 계절이다. 달콤한 사탕의 유혹에 빠져 집에 숨겨둔 도망자를
헌병에게 고자질한 어린 자식을 제손으로 쏘아죽인 주인공.메리메의
소설"마테오팔코오네"의 줄거리를 잊을수가 없다. 비정한 아버지의 자세가
돋보이고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눈물로써 자라는 한 아이의 운명과
개성을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강한 인생의 자세를 가르치는게 아버지의
역할이다. 본질적인 가정의 의미는 교육에 있고,그 역할의 태반은
아버지의 몫이다. 바로 엊그제 "아버지의 20계명"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30 40대의 다양한 계층의 인사들이 만든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들어져 "아버지 소식"지에 실린 것이었다.

여기 일일이 옮길수는 없으나 몇가지 두드러진 것만을 꼽자면 부자간에
대화의 소재만들기,자녀에게 결정권을 많이 줄것,자녀에게
편지쓰기,양보다는 질의 시간갖기,직접적인 꾸짖음보다 비유를 더
사용할것등인데 특별히 새로운건 없어도 이러한 노력은 퍽 신선하고
돋보였다. 흔히 무기력과 타락으로 이어지는 가족이기주의를 벗어나
자녀와의 공동체험을 가지려고 애쓰는 "좋은 아버지들"이 늘어날수록
주위가 밝아질 것이다. 딱딱한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곁에서 그림자로
남는 보조자의 소임이 더큰 설득력과 좋은 아버지상으로 비칠수도 있겠다.
그것이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는 지름길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