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어느 실업가가 공장장과 공장을 돌아보다가 기계밑 깊숙이
페닉동전 한닢(1마르크의 1백분의 1)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꺼내 포켓에 넣었다. 그때 공장장이 "그까짓 푼돈을
가지고 뭘 그렇게 애쓰십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이것이 1마르크의 2년분
이자에 해당되네"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하잘것 없는 푼돈일망정 따지고 보면 보통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력을 지닌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수 있다"거나 "돈이 말을 하면 진실이
침묵한다"는 옛 속담이 얘기해주듯이 돈으로 진실과 양심,명예와
권력,존경과 사랑을 살수도 있고 온갖 외적인 호화로움을 누릴수도 있다.

그러나 돈으로 거머쥘수 없는 것이 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이다.

소크라테스는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것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했다. 공자도 "논어"의 옹야편에서 "나물밥을 먹으면서 물을
마시고 팔을 구부려 베개를 삼아 살아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반소식음수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고 하지 않았던가. 행복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외형적인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걸어온 오랜 발자취의 단면을 되돌아 보면 권력과
명예,그리고 경제적 부를 얻으려는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고도 볼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류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수는 없다.

그러한 원동력들이 인간을 위한 최선의 노예가 아니고 최악의 주인이
되어버렸을 때에는 인간의 삶을 번뇌와 비애,죄악과 추악에 빠뜨려
불행하게 만든다. 요사이 말을 빌린다면 갖가지 스트레스에 싸여
허우적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양대의대 신경정신과 유완상박사가 조사한 "가정주부의 생활사건
스트레스 연구"결과도 이러한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사례인것 같다.
가장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소득이 많아진 가정의 주부들일수록
그와 정비례하여 가장의 직장이나 재산관리등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더욱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정의 삶이 행복할리는 만무하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과유불급)"는 공자의 중용지도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