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다니까 가까운 문우 C형이 "허형,글 쓰는
일은 여름에 돼지고기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오. 아무리 잘 해도 본전
밖에 안되니까요"라고 충고해주었다. "여름에 돼지고기 먹기"란 옛날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여름에는 돼지고기를 아무리 잘 보관해도 얼마간은
상하게 마련이고 조금이라도 상한 돼지고기는 식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도 이와 같아서 아무리 잘 해봐야 본전치기이고,자칫 잘못 되면
식중독 아닌 글중독을 일으켜 고생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수삼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그 때도 필자는 모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마지막회 원고를 신문사에 넘겨주고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예의
C형을 만나 어디 막소주집에선가 술판을 벌이던 참이었다. C형에게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오늘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주었노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했더니 그는 마시던 소줏잔을 탁 놓고 정색을하면서 "그건 안돼요.
지금 당장 신문사에 전화해서 어떤일이 있어도 빼도록 하시오"하지 않는가.
그 어조가 하도 단호하길래 곡절 끝에 연판까지 다 뜬 원고를 겨우 빼내긴

했다. C형이 단호히 "안된다"고 한 글은 다름 아닌 모종교에 관계되는
뒷얘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그의 예단에 따르면 사태의 전개는 이렇다.
그 글이 신문에 그냥 나갔다면 이튿날 아침쯤 필자의 집 앞에는 당해
종교의 골수 교인들이 몰려와 이놈 나오라고 고함을 칠 것이고 필자의

직장에 가서는 당장 목을 자르라고 농성을 할 것이다. 이런 신고와 수모를
겪다가 결국은 눈이 까만 자식들을 두고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무슨
고발이라도 당해서 법원 출입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손치더라도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있는 사안이었고,그 일로
해서 한 가장의 인생행로가 엉뚱한 데로 바뀔수도 있는 경우였다. 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해프닝만 생각하면 C형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일언이폐지하고 요즘은 냉장고의 성능이 아주 좋아서 글 쓰는 일이
"여름에 돼지고기 먹기"는 아니리라 믿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