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보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일,역사적이지 않은 날이 없다.
셰익스피어는 "온갖 인간의 생활에 역사가 있다"고 했다. 세상만사가 모두
역사아닌것이 없고 하루하루가 곧 역사라는 뜻이다. 황징 개인도 아니고
국가와 정부의 활동에서야..

오늘 북경에서는 한.중수교의정서가 두나라 외무장관간에 정식
서명교환된다.

한국은 12억의 거대한 중국과 전후의 오랜 단절과 반목을 청산하고 상대의
존재를 외교적으로 공식승인함과 동시에 대등한 국가대국가간의 관계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1992년8월24일 오늘이야 말로 역사적이라고 말해
손색이 없는 순간이다.

실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속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이 아침에 실감하게
된다. 1948년 정부수립때부터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으로 우리를 정치적
외교적으로 적극 도왔고 그뒤에도 줄곧 돈독한 협력관계를 지속해온
중화민국(대만)과는 단교가 선언되고,대신 6.25참전으로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끼친 중화인민공화국(얼마전까지도 우리가 중공으로
불러왔던)과 국교를 수립하기에 이른 냉엄한 현실에 우리는 오히려
착잡함을 금하기 어려워진다.

아무튼 세계는 변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쉴새없이
변하고 있다. 한.중수교도 결국은 그런 큰 변화의 한 물줄기에 해당한다.
탈이데올로기와 탈냉전의 물결속에서 이미 예견되어온 일이다. 의당
와야할것이 온것 뿐이다. 필요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것도,지나치게
흥분하거나 들뜰 일이 아니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 의미를 반추하면서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한.중수교의 가장 큰 의의는 역시 동북아정세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우랄산맥 이서에서 시작된 탈이데올로기와
탈냉전바람속에 바야흐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중에 있지만 한반도를
중심한 동북아에는 아직 냉기류가 걷히지 않고있다. 개방을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온전한 일원이 되기를 주저하는 북한과 그를 의식해온 중국의
조심스런 행보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졌다. 중국.북한관계가 재조정되고 미국 일본과
북한간의 관계에 변화가 오게 되었다. 결국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물꼬가
한.중수교에서 터졌다고 봐야한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동북아평화와
안정은 물론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촉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태동이 시작된것이라고 해야한다.

실로 중대한 순간에 우리는 서있다.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일찍이
보기드문 역사적 전환점에 우리는 지금 위치해있다. 한.중수교는
북방외교의 사실상 마무리인 셈이며 지난 90년9월30일 한.소수교에
버금가는 외교적 성과라고 할수있다.

이 성과는 그러나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진게 아니다.
세계대세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돼 왔고 우리가 그 흐름을 적절하게
탄것뿐이다. 외교적 "완승"이라고 자만할일이 아니고 심지어 어느
한사람의 치적이나 업적으로 돌릴 일은 더욱 아니다.

동북아에서 새롭게 일고 있는 도도한 역사적 대세를 어떻게 호기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이같은 구도재편의 물결속에서 한국이 당당한
위상을 정립하고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려고 하면 내적 기반이 확고해야
한다. 내치에 실패하면 외치의 성공은 사상누각이 된다는 점을 역사는
누누이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내치는 지금 어떠한가.
심지어 집권세력인 여권마저도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임기말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국력의 원천인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내적 취약성을
가지고 어떻게 아시아의 새시대를 주도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런데도
국가원수는 연이은 외국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임기말에는 내치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한.중수교를 계기로 달라질 동남아정세,새로이 전개될 한.중.일 3국
정립시대에 우리는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지도자는
말할것 없고 경제인 일반국민 관리 할것없이 정신 바짝 차려 실리를 찾아야
한다. 가장 큰 실리는 바로 경제에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경제가 강해져야 한다. 동시에 보다 세련된 외교역량을 길러야 한다.

한.중수교가 되었다고 무작정 중국행버스를 타는 과당경쟁과 무절제가
있어서는 안된다. 들뜨지 말아야 한다. 경제인뿐 아니라 정치인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냉정하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설계하자. 북방외교는 완결이 아니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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