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광복47주년을 보내면서 거리엔 태극기가 나부꼈다. 매스컴에선
정신대문제등 일제만행을 들추어내어 우리의 마음이 어느때보다도 어둡고
울적했다. 일제36년의 한과 응어리에서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광복절이 해방을 경축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일제에 대하여 분통을 터뜨리는
날로 머물고 있음이다. 자신의 날이 아니라 남에 대한 날이 되고 있다.
광복의 환희를 되새기기 보다는 망국때 당한 설움에 깊숙이 빠져드는 날이
되었다.

광복절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자강에 있다. 다시는 통한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자강을 이룰수 없다. 우리의 마음과 몸만이 우리를 지킬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역사는 냉정하게 가르친다.
지난 30년의 우리의 경제개발도 우리운명은 우리들 하기에 달렸다는
각오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국력의 원천인 경제를 생각하지 않고 옛날에
집착하면 공리에 빠지기 쉽다.

한일은 2차대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데도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은원의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기는 아주 먼
남남보다는 골육간이 더하다고 했듯이 한일이 이웃사촌이기 때문에 그런가.

한국에선 요즘 몇년 일본의 반성없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다.
일본에선 혐한.염한이 주류를 이루어 전에는 친한이던 사람들까지 반한으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진출 기업들도 동남아로 무대를 옮기고 있다.
한일경제관계는 지금 협력보다는 이반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상품은 고가품은 일본제품에,저가품은 일본의 지도로 만든
동남아제품에 밀리는 포위상태에 몰려 있다.

한국측은 일본이 너무도 엄연한 사실인 정신대문제에서 까지 발을 빼려는
작태를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이를 민간업주의 공창차원으로
인식하는데에 분노를 느낀다. 그런가하면 일본에선 세차례의 걸친
공식사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잘못했다"를 요구하는 한국의 여론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것 같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 보다도 앞장서서
일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고 그들은 역겨워한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어떤 한국학생은 한일간의 트러블이 사고 관습등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본인은 기탄없이
지적하는 일을 삼가는 편이고,한국인은 허물없는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대립을 싫어하여 이심전심하기를 좋아하는데 한국인은
대립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분석이다.
매스컴의 보도에서도,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언론은 직설적으로
반응하는데 비하여 일본언론은 빙빙 돌려서 할말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일의 갈등은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양국이 공동의 안보목표를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더구나 일본이
동남아경제진출을 강화하면서 한국효용론이 빛을 잃은 것이 한일연결고리를
무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경제열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환경을 둘러싼
남북대립,EC통합,북미자유무역협정등 세계경제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한일간의 협력필요성은 날로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빼놓고도 아시아경제블록화를 주도할수 있다고 자신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전국시대같은 원교근공책은 오늘의 세계에선 도덕적
기반을 잃는다. "21세기 미국파워"를 쓴 하버드대 조제프 나이교수는
세계적 리더십에는 전통적 경성자원도 필요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상호의존을 유지하기위한 이념.제도등 연성자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가장 가까운 한국과 상호의존을 거부하면서 먼 나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 한다면 도덕적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으로서도 일본의 협력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웃에 세계적 경제대국이 있는 점을 충분히 선용해야 한다. 그것이
자강의 길이다. 역조.기술이전문제등 불만요소도 많지만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자신의 와신상담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아픔을 밖으로
외치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이를 쓰라리게 연소시켜 힘을 길러야 한다.
일본을 선용하는 냉정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역사를 묻어버리고 경제만을 도모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역사는 1역사적 차원에서 2상호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3냉정하게 4상대국의 문화풍토를 존중하면서 5상대방 입장에 서서 차분히
정리하면 비로소 과거가 현실의 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유엔인권소위가
정신대문제를 다루기로 했다니 이것이 양국이 냉정을 되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우리세대에 양국의 선린관계에 길을 연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