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세계최고""동양최고"가 많다. 그런데 이것들이 대개는
"최하"와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겉모양은 근사하게 부풀려 있는데 속은
텅빈 꼴이다. 거품성이 많은 셈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려고 기를 쓴다. 학비를 대려고
논팔고 소팔아 대학은 우골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자신들의 "노후"까지
팔고있는 부모들의 갸륵한 교육열은 가위 세계최고 급이다. 막상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세계최하급이며 교육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세계최고의 향학열은 궂은 일을 마다하는 젊은이를 양산하여 산업역군을
앗아가고 있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또한 각종 종교가 번창하고 있는 종교천국이다. 각종 교도를
합치면 총인구보다 많다. 그러면 한국사회는 그토록 신실한가. 이웃을
돌보지 않고 흉악범이 날뛰며 등치기 사기치기가 횡행하는 것이 이 사회다.
이것은 물론 종교의 탓은 아니지만 사회전체적으로 보면 표리불동임에
틀림없다.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 하는데 빛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올림픽에서 육상부문이 시원찮은 것이 우리인데 각종공사속도의 빠르기는
세계 최고급이다. 서구에선 왕궁이나 사원하나를 짓는데도 수백년을
각고하는 예가 흔한데 우리는 최소한 수십년 걸려야할 신도시건설도 단
몇년만에 후딱후딱 해치운다. "불실"을 안고 출발한다. 지금 그 원인을
찾고 있지만 신행주대교가 건설중에 무너진 것도 크게는 속도전의
부산물이다. 과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한강물에 빠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고 외관갖추기가 내실을 멍들게 한다. 자기집에
살건 셋집에 살건 너도나도 차를 사들여 자동차증가율은 세계최고인데
교통질서는 세계최하다. 서구인들보다 큰차를 탄다. 우리의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긴데 경쟁국중 제품불량율은 가장 높다. 각급 선거에
난무하는 공약은 쓴약은 없이 달콤한 사탕들만 나열되지만 이것들이
안지켜지거나 못지켜지는 일이 허다하다.

각종 제도도 세계에서 좋다는 것은 모조리 베껴다 놓았으나 이런 일 저런
일이 퉁퉁 터진다. 모양만 갖춰놓고 속차리기는 외면한다. 현실과
동떨어져 빗나가는 일도 비일비재다. 법정근로조건만 봐도 1인당GNP
2만달러수준 나라들의 좋은 것만을 골라다 놓았다. 시간외 근로임금이
일본 독일은 25%가산인데 우리는 50%가산이다. 우리기업들이 일본
독일기업보다 더 튼튼한가.

각급 행정책임자들은 자기임기중에 치적을 쌓으려고 공을 다툰다.
위임받은 행정인데 자기것처럼 떡주무르려 한다. 국정은 면면한데 왜 개인
임기에 맞추려고 거창한 일에 무리를 하는가. 철도나 통신같은 사회자본이
임기와 무관하게 수립된 것이면 계획대로 하면 된다. 임기중에 뚜렷한
공적을 세우려는것이 졸속으로 인힌 부실을 낳게 된다.
누구보다도 돋보이려는 체면문화가 우리 사회의 탈이다.

고려청자가 단절되고 이조백자가 돌출되듯이 우리는 승계보다는 자기만
우뚝 솟으려고 하는 모양갖추기가 문제이다. 대한민국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되어있다. 좋건 나쁘건
전임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해준 대통령을 가져본적 없는것이 우리의
단절문화다.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여 자신만 돋보이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긴 역사로 보면 만신창이가 될수밖에 없다.

남을 강하게 의식하는 체면문화는 결국 알맹이가 부실해져 개성을
잃게한다. 사치풍조등 우리사회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것도 외모만
중시하는 탓이다. 올림픽에서 경기내용보다도 금메달수에만 일희일비
하는것도 겉치레로 남의 나라보다 앞서자는 심리이다. 여야가 국정을
팽개친채 국회를 못열고 있는 일도 따지고 보면 체면싸움이 아닌가.
그래서 국정은 멍들고 국회는 있으나마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다산은 "도량형을 중하게 여기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일정하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체면에 집착하여 과욕이 앞서고
이것이 자기나름의 잣대로 세상을 요리하게 만든다.
잣대가 서로 다르니 총체적으로는 부실해질수 밖에 없다.

한국은 지금 88올림픽에 이어 엑스포 고속철도건설 영종도국제공항건설
G7계획등 곧 선진국에 뛰어오를것 같으면서 세계시장에선 하위로 처지고
있다. 체면문화가 내면의 부실화를 재촉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