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보우하면 한국의 현 불교 조계종단의 종조로까지 추앙되는 고려의
명승이다. 1301년에 태어나서 1382년까지 사셨으니 몽고지배하의
고려전시기가 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세때에 충렬왕이
죽고 또 그가 82세로 돌아가시고 10년뒤에 고려가 망한다. 나는 이 스님의
시대와 사상을 보면서 우리시대의 사상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로 그 시대는 처량한 시대였다는 생각이다. 위로는 "대원황제
만세만세 만만세"를,아래로는 "국왕전하 천년천년복천년"을 축원해야만
하는 시대였다.

정치의 요체를 "지공무사 경불외천"에 두고 "악의악식 장신암곡"(몸을
암곡에 숨기다)을 자기 신조로 삼고 수행하여 도를 깨친 그는 향을 사르며
말한다. "이 향로속에서 부처를 불사르고 조사를 불사르고,생을 단련하고
사를 단련한다. 노승에게 면회(체면과 예의따위)가 없음을 괴이하게
생각치말라"
태고보우스님을 일종의 사상적 사대주의자,중국선맥의 맹종자로 보는
견해는 바로잡아야 할것같다. 그가 태고암가라는 노래를 지어
석옥청공화상에게 가지고 가서 인가를 받고 그의 법맥을 잇는 제자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훗날 자기의 제자가 중국으로 건너갈때 이런
시를 주었다.

"해동천고월(해동에는 천고의 달이 있고)/강남만리천(강남에는 만리의
하늘이 있다)/청광무피차(맑은 달빛에는 여기와 저기가
없다)/막인제방선(여기와 저기 선이 다르다고 오인하지말라)"
태고스님은 분명히 깨달은 분이었다. 태고암가는 그의 오도송이다.
삼각산에다 태고암을 짓고 살았다. 거기서 태고의 사(일)를 하셨다. 그는
말한다. "그대여 아는가,태고암사에서 벌어지는 태고의 일을 (군불견
태고암중 태고사)/지금 그속에 역역히 백천의 삼매가 있고(지저여금명역역
백천삼매재기중)/연분을 따라 사물을 이익되게 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네(이물응연상적적)// 그런데 이암자엔 노승이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야/티끌과 같이 많은 부처와 조사가 그 풍격을 나누어
갖고 있는 것이지(차암비단노승거 진사불조동풍격)"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암자는 본래 태고란 이름이
아니었어(차암본비태고명)/바로 오늘때문에 태고라
하지(내인금일운태고)/하나안에 일체가 있고 그 많은 일체의 것안에 하나가
있지/그러나 그 하나를 취하거나 득하지 않아야만 언제나 명료하게 아는
거지(일중일체 다중일 일불득중상료료)//모나야 할땐 모나고 둥글어야 할땐
둥글고(능기방 역기원)/흘러 굴러가는 곳을 따라 모양은 다르지만 언제나
유현해(수류전처창유현)/그대가 묻는가. 이 산중의
경치를(군약문아산중경)/소나무바람 소슬히 불어오고 달이 온하늘에
가득차있다네(송풍소슬월만천)"//
태고암은 우리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은 원형(archtype)의 마음,일심이요
여여한 마음이다. 그마음이 하는 일을 태고사라 한 것이다. 그것은
청풍명월과 같은 것이다. 네것 내것이 없다. 동서고금이 없다. 하물며
남북이 있겠느냐?
나는 최근 일본 동경에서 일본문화와 한국문화 그 동질성과 이질성이란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고 생각했다.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남북간에도 같은 문제가 있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은 이 사람과 저
사람사이에도 있고,이 마을과 저 마을사이에도 있다. 오랫동안 따로 살면
많은 것이 달라질수 있다. 무엇을 믿느냐,어떤 교육을받고 어떤
역사속에서 살아왔나 하는것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클린턴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을 들으며 또 생각했다. 미국이 정신차리기
시작했다고.. 과연 우리는 우리 정치인들은 이 문화의 문제를 어느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한일간에 같은 것,다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남북간의 문화에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아무리 같아도 그것이 인간의 타락한 심성이요,그런 심성에서 나온
행위들이라면 그것을 비교해보면서 같다고 손뼉치며 좋아하는 꼴은 차마
볼수 없는 광경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더러운 마음을 가졌다는 데에서
동서남북 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좀더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할것 아닌가. 그것이 문화다. 태고의 마음을
우습게 보던 문화가 아메리카니즘이다. 지금 미국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돈만을 위해,이 마음의 문화를 짓밟고 있는 오늘의
세계를 위해 태고스님은 "저 흰구름을 보라. 저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라"하고 손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