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감시를 받는 것처럼 부담스러운 일은 없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감시 감독을 받게 마련이다. 특정 조직체나
사회,나아가서는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수 밖에 없는 인간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룰에 따라 제약을 받거나 감시 감독을 받아야 하기때문이다.
물론 그 사회의 정치체제에 따라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수 있다.

그 극악한 예를 영국작가 조지 오웰의 정치소설 "1984년"에서 찾아 볼수
있다. 당과 빅브라더(대형)에 대한 어떠한 저항이나 배반도 용인되지 않고
인간의 사생활은 물론 사상마저도 철저히 통제되는 극한상황의 전체주의
사회가 상정된다. 근무장소는 물론 집안의 거실,거리,광장등 사람이
있을수 있는 모든 곳에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을 설치해 놓아 행동이나
대화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감시를당한다. 인류사에 결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상실지대라 할수 있다.

1949년 오웰의 그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그러한 감시장치가
나오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가상의 세계를 훨씬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다. 그것도 전체주의사회가 아닌 자유민주사회에서
가시화되었다는 사실에 이르면 한숨이 절로 나올수밖에 없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 설치된 객장감시 카메라,직원의 근태상황을
점검하는 기업체의 컴퓨터,전문이나 전화를 도청하는 장치,몇십만리밖에
있는 인간의 동태를 샅샅이 잡아내는 정찰인공위성,사상까지도
통제할수있는 거짓말탐지기. 새로운 형태의 빅브라더가 속속 나타나 인간을
감시하고 있는것만 보더라도 오웰의 상상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최근 삼성그룹이 느슨해진 여름철 근무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사원들의 잘못된 근무행태를 비밀리에 촬영한 비디오기획물을 사내방송으로
내보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는
문제가 없을수 없으나 이러한 비상책을 동원한 회사측의 고충에도 공감이
가는 것은 어쩔수 없다.

조직화된 관리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유민주사회의 기틀이 자율성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