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가치가 가장 고귀한 가치입니다"
박홍(51)서강대총장은 시대적 변혁기를 맞아 반생명적 행태들이 만연돼
있어 생명의 뿌리를 되살리는 길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일으키는
첩경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간의 생명뿐만아니라 자연의 생명,기업의
생명,정치의 생명등 유.무형의 모든 주체의 생명에 대해 그 뿌리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 직후 "죽음을 선동하는
반생명적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박총장은
정의구현사제단등에 참여하는등 갖가지 사회활동등으로 인해 "행동하는
사제"로도 알려져있다. 격식차리기를 싫어 한다는 박총장은 집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생명문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연신 줄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난해 생명문화연구소를 발족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이러한
연구소를 발족시키고 이사장으로 취임하게된 배경부터가 궁금합니다.

?박총장=우리는 지금 대변혁기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가 급격히 변하고
우리나라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체험은
한국이 가장 진하게 느끼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의 시대적 배경이 생명과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한 배경이지요.

동구나 소련체제의 붕괴,중국의 변화등이 대표적인 세계적 변화이지요.
냉전시대의 종식으로 전쟁의 문화가 화해와 평화의 문화로 바귀고
있지않습니까. 한국도 권위와 독재에서 민주화의 여망이 나타났고 타율로
소외에서 참여로,획일화에서 다양화로 변화하는등 많은 욕구들이 분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말과 행동을 통해 여러가지 경로로 나타나게
되지요. 또 변혁기에 나타나는 행동이나 의식의 변화는 좋은것만이 아니라
모순된것도 분출되는 양면성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권리를 주장하면서
책임과 의무는 퇴보하고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반민주적인 행태들이 더
많이 나옵니다. 제도적 구조적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폭력을 거짓합리화로 스스럼없이 실천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생산과 분배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나눔"의 사회정의인데도
과거의 수탈당한 보복으로 생산에는 함여하지않고 분배에만 참여하려고
합니다. 집단이기주의의 만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있습니다.

이것은 지식인 근로자할것없이 똑같아요. 과거를 시정한다는 싸움이
결과적으로 현재를 부수고 미래를 망치는 모순을 범하는것으로
볼수있습니다.

과거에 대해 기억된 미움이 가장 반생명적으로 볼수있는 폭력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면서 행동으로 나타났어요. 이 미움은 "시커먼
어둠의 세력"이라고도 말하고 "혼의 그늘"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시커먼
어둠의 세력이 내면화되면 자살이되고 외면화되면 살인으로 나타납니다.
근래에 많았던 분신등이 그 예이고 화가난다고 자동차를 질주시켜 사람을
다치게하고 전화빨리 끊지않는다고 사람을 찔러죽인일 등이 또다른 예에
속합니다. 또한 과거에 대한 미움은 "동형복수"를 선택해 "악은
악으로"대하려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이것이 반생명의 고리입니다.

변혁기중에서는 지난해에 이러한 현상이 피크를 보였다고 봅니다.

대학에 있으면서 이러한 생명을 거스르는 변혁기의 모순을 단절시킬수는
없을까 하는 시대적인질문앞에서 고민하다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라는
기치아래 생명과 문화의 가치를 찾아보자고 한것이 연구소 설립의
배경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생명문화연구소는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박총장=처음설립때는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보자고
했지요. 김지하씨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제정구씨,철학자 정의채
박사등과 함께 논의했고 천주교 개신교 불교 유교할것없이 모든 종교와
각대학 총장등 학계등이 발기인으로 동참했습니다. 언론 문화등
각계인사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강대부설로 돼있습니다만 대학을
초월한 단체입니다.

지금까지 세미나도 몇차례 열었고 앞으로 연구활동도 넓혀나갈 것입니다.
주로 생명가치와 폭력의 뿌리등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를 아무리 어렵더라도
할것입니다. 특히 오는 10월에는 세계적인 학자들까지 참여해서
뇌사문제를 다뤄볼 예정입니다. 생명인식에 대한 사회조사도하고 그결과는
책으로 펴낼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지금 가치질서가 혼돈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명가치가
가장 고귀한 가치입니다. 생명가치를 중심으로해서 나머지의 가치질서들이
형성돼야합니다. 이러한 가치질서의 회복을 위해 교육.언론등을 통한
사회운동이나 깊은 연구도 할 작정입니다.

-결국은 생명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것으로 볼수있겠군요.
쉽지않은 일로 생각이 됩니다만 이러한 가치질서의 확립등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할수 있는 과제들은 어떤것들이 있다고 보십니까.

?박총장=일의 타락,노동의 타락을 시정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일을 함으로써 사람이 사람답게되고 삶의 보람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일의 맛을 모르고 잊어버리는것이 너무 많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모르고 먹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일의 맛을
찾아야 합니다. 일하는데 따른 노동의 긍정적가치,즉 땀흘려 일하는 것이
자신과 이웃을 돕고 사회를 위하고 국가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가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풍토가 일의 종류에 귀천이 없이 똑같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지요. 또 말로만 떠들것이 아니라 지성인들이
지도층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교육도 제대로 이뤄져야하고 기업도 탈바꿈돼야합니다. 요즈음의
어린이들을 보면 무척 걱정입니다. 전자오락게임등을 통해
파괴하는것,부수는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면서 자라납니다.

앞으로 이런 어린이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즈음 학생들을 포함,젊은이들의 생각은 많이 건전화되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학생소요등도 줄고 노사분규도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데요.

?박총장=많이 변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도 불씨는 많습니다.
사상적으로 방황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직도 비판적 시각의
근로자들도 허다하구요.

여기에 대해서는 신뢰와 사랑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쉬쉬할게 아니라 서로 터놓고 설득하고 대화를 하면 모든게 풀린다고
봅니다. 젊은이들은 사랑에 목말라 있습니다. 좀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악을 선으로,거짓을 진실로"대하면
안될게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학교 학생들과도 가슴을 열어놓고
얘기하다보면 의외로 빨리 좋은 방향으로 해결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존중과 사랑의 대상이지 지배와 착취와 이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상처입은
조개가 진주가 되듯이 상처받은 사람들일수록 사랑으로 치유되면 사회의
재목이 됩니다.

-얘기의 방향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가톨릭사제의 길을 걷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박총장=원래 우리집안은 유교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친께서 가톨릭에
귀의해서 열심이셨지요. 자연히 가정도 신앙의 진리가 중심이 됐고
어릴때의 이러한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것 같습니다.

뭔가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의사가될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신부가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남매(6남4녀)중의 제째로 대구에서 태어나서 경주 영천등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요.

대학은 지난 65년에 가톨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대건신학대학에서
신학도 공부했습니다. 그뒤 미세인트 루이스대에서 영성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74년부터 79년까지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없습니까.

?박총장=많지요. 그중에서도 진리에 순종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인생은 어차피 선택입니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가 진리에 접합됐을때 그
열매는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진리에 접합되면 추한것이 되고
부패하게 됩니다. 특히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흔히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는 존중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풀한포기 돌멩이하나도 모두 그 존재이유가
있는것입니다. 하물며 어느사람에게서나 배울것은 많다고 봅니다.

-젊은 사람들만 탓할게 아니지 않습니까.

?박총장=물론이지요. 이 사회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세계의 엄청난 변화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이 10년만 덕늦게 나타났더라도 우리나라가
위험했을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취약점이 높았다는 얘기도 됩니다. 정치인들도
국민에게 희망을주는 정치를 해야지요. 말하자면 생명을 불어넣는 정치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박총장은 생명경시풍조에 대한 경고이외에도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것이 급선무이고 이것이 곧 새로운 생명문화의 창조라고
강조했다. 지난 70년부터 한국가톨릭지성인협회전국지도신부,한국가톨릭
대학생전국지도신부,크리스챤사회행동협의체 초대이사장등을 지내 행동하는
사제의 면모를 보여줬고 지난70년 강사로 서강대와 인연을 맺은뒤
88년9월에 교수로 승진됐고 89년1월에 최초로 선거에 의해 총장으로 선임돼
많은 일을 해오고 있다) <대담=이계민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