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육체파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나오는 영화 "정사"가 기억에
남는다. 결말이 매우 싱겁고 아리송하다. 여주인공이 갑자기 섬에서
자취를 감춘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 실종. 이것이 안티로망(반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도 있을수 있다는 것이 현대에
대한 해석이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아무런 이유나
원한도 없이 아라비아인을 총으로 쏜다. 재판정에 선 그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살인했노라고 털어놓는다. 완전한 무동기의 살인이다. 카뮈는
그가 쓴 에세이 "반항적 인간"에서 살인엔 두가지 종류가 있음을 밝힌다.

논리적 살인과 격정적 살인인데,전자는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이
저지르는 범죄를 가리킨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친구의 배를 찌르고,그의 애인을 가로챈다. 현대는
뫼르소나 반항인들의 무대이다. 사방에서 그들을 목격한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모든 인간의 행동은 성적충동에서 비롯된다고
외쳤다. 이를테면 잠재워지지 않은 감정이 불쑥 스파크를 일으켜 범죄로
연결된다는 얘기였다. 인간의 양면성이랄까. 인간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알수 없다.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건 인간이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앞세우고,법보다는
주먹을 먼저 선택한다. 그래서 우리들 주변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무리들이 그얼마나 많이 널려있는 것일까.

내기바둑을 두다가 사람을 죽인 50대남자와 술집에서 만나 사소한
시비끝에 상대를 숨지게한 두예화는 아무래도 상식의 잣대로는 재기 어려운
얘기가 아닐수 없다. 엊그제 대구에선 커피 넉잔의 내기바둑판을 앞에
놓고 한모씨가 상대인 손모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으며,부산 초량동의
새벽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이모씨가 옆손님이 쳐다보며 웃는다고
결투를 신청하여 끝내 상대의 목숨을 앗아버린 비극이 생겼다.

고작 커피넉잔과 단순한 기분이 불러일으킨 사건치고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한마디로 개죽음 아닌가. 서양의 결투는 멋이라도 있지만,이건
개코만도 못하다. 스트레스는 세균이다. 이것을 물리치자면 감정의
훈련부터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