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비몽사몽간에 남북이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백두산에 올라서서
서쪽으로부터 북쪽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저멀리서 흘러오는
아물(큰강,흑용강)을 보았다.

그리고 목단강 우수리강 두만강 술분강을 보면서 역사가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듯 했다.

우리나라는 큰 나라였다.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로 졸아든 것은 서기962년
발해 애왕이 요(계단족)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발해가 멸망한 때부터 였다.
대륙을 잃은후 반도 남쪽의 일부로 졸아든 것이 고려말 위화도회군으로
아주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나라를 잃어버린 때도 있었고
지금은 둘로 쪼개져 있는 상태다.

우리는 이런 형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몇해전부터 만주와 연해주에 갈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꿈같은 일이다. 실로 천년만에 고구려 발해를
찾아 자유로이 두루 다닐수 있게 된 것이다. 당당한 국적을 가지고
조상들이 살던 따을 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졸아들고 쪼개져서 큰 것을 못보고 먼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서로
다투며 살아왔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의 세계는 새로운 역사의
전개를 예언하고 있다. 글로벌-보더리스 월드(Global-Borderless World)의
새로운 미래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눈을 뜨고
넓고 먼곳을 바라보아야 할때가 왔다. 백두산에 올라서서 동서남북을 다시
바라볼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3월초 하바로프스크에서 아물(큰강)얼음위를 자동차로
1시간이나 북쪽으로 달려가 중국 국경에 이르러 얼음 구멍을 뚫고 낚시를
했다. 잡히는 물고기는 붕어와 메기- 우리나라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예부터 물고기나 사람이나 물을 따라 이동하기는 마찬가지구나. 아물은
끝없는 초지에 펼쳐진 바다와 같은 강 이었다. 이번 6월에는 같은
아물에서 쾌속정으로 우수리강과 합수점을 지나 동쪽으로 1시간을 내려가
보았다. 다음날 반대 방향으로 4시간이나 올라가 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바다와 같은 강물,큰물,아-물! 무엇으로 이 감회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은 이 큰물과 해안을 따라 만주 연해주 반도로 이동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나는 아물뿐아니라 두만강 우수리강 술분강을 모두 돌아보았고,연해주와
북한의 인접지인 하산과 포시에트도 돌아보았다.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도문강은 승가리(송화강)를 이루고 승가리는 만주
한복판을 흘러 아물과 합류한다. 한편 목단강도 백두산맥에서 흘러서
우수리강과 합류하고 우수리강은 또 아물과 합류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발상지는 백두산이라고 일컬어 온 것이다. 이지역은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었다.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지 17년후(서기685년)고구려 유민 대조영에 의하여
건국되었다. 건국초기부터 당과 계단족의 끊임없는 침공을 막아내야 했다.
한때는 당이 신라를 유인하여 라당연합으로 발해를 괴롭힌 때도 있었다.

발해의 동경은 지금의 연해주에 있었다. 8세기(대흥57년)문왕때에 서울을
상경(만주 길림성 영안현 서남에 있는 동경성)에서 동경 용원부(연해주
송왕녕)로 옮겼다(성왕때 다시 만주 동경으로 환도했음). 발해의 애왕이
요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멸망한 후에도 동경 용원부(연해주)의 수장은
독립군을 일으켜 끝까지 요에 대항하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연해주 평야를 흐르는 술분강의 "술분"이란 뜻은 옛날 전쟁때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가 강물속에 수북히 쌓인 것을 보고 병사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애도하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는 러시아인 여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는 또다른 감회를 느끼면서 술분강의 어원과 발음이 우리말과 일치함에
놀랄 뿐이었다.

나는 동경성의 옛터인 송왕녕과 술분강가를 거닐면서 생각해 보았다.
천년이 아니라 백년이라도 미래를 보자. 아니 십년만이라도 미래를 보면서
대륙과 세계를 바라보자. 우선 숨막히는 현실에서 풀려나 크고 넓고
먼곳을 보는 마음을 가지고 희망을 품자. 물론 냉혹한 현실에 따르는
치밀한 계획과 실천이 뒤따라야겠지만 산을 보고 숲도 보아야 한다는 우리
조상의 교훈을 깊이 생각하고 따라야할 때이다.

중국과 일본을 보자. 매일 수백명의 중국인이 각개약진식으로 우수리강을
넘어 러시아 극동으로 이주하고 있다. 일본은 공중으로 즉,통신과 항공을
비롯한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당때로부터의 숙원을
이루고자 하고 있으며,일본도 러.일전쟁을 비롯하여 1920 23년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지역을 점령,통치한 역사로 보아 러시아 극동지방에 대한
숙원이 있을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런때에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굳게 손을 잡고 친선의 폭을 넓혀야 한다.
경제 뿐아니라 예술 문화 역사 교육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두나라의 영원한
번영을 이룰수 있는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국경과 영토의 개념이 아닌 진정한 "보더리스 월드" 속에 건설되는
문화권과 경제권을 형성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는 러시아
일본 중국등과 협력해야 한다. 이것이 21세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