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시성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1922년 일본
동경을 방문했을때 당시 일제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을 동방의 횃불로
예견한바 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절에/빛나는 촉등의 하나였던 한국/그 등화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 못지않게 한국의 밝은 미래를 예견한 루마니아 태생 서양인이
있다. 지난 22일 망명지 파리에서 이 세상을 떠난 "25시"의 작가 콘스탄트
비르질 게오르규(75)다. 여섯차례나 방한했던 그는 몇년전 "한국-미지의
나라"라는 저서에서 그 등불이 서울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타오르려하고 있다고 진단했었다.

그의 예상이 근년들어 빗나가고 있는듯한 현실의 안타까움을 떨쳐버릴수
없지만 그가 생전에 "한국을 조국 루마니아처럼,그 이상으로 사랑한다"고
자주 얘기했었던 것은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게오르규가 몇십만리 이역의 한국에 대해 관심 이상의 애정을 쏟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류사성의 만남,동서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할것 같다.

국토 넓이가 거의 비슷하고 5천년과 2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과
루마니아가 현대사에서 겪은 고난의 길이 너무나 흡사하게 그의 눈에는
비쳤다. 일제통치와 동서냉전하의 남북분단을 경험한 한국,나치스와
볼셰비키의 학정에 시달린 루마니아.최후의 시간뒤에 오는 시간,메시아의
구원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시간인 "25시"적 상황의 무대들이었던 것이다.

게오르규는 그러한 고난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한국혼이 마음에
와닿았던 모양이다. 몇천년을 이어온 홍익인간의 사상,문명국의 모범인
노인공경,사랑의 성실성이 깃들인 일부일처제,관용의 종교관,일제의
핍박속에서도 시들지않고 살아있는 말 글 그리고 무궁화,우주의 대질서를
상징하는 독창적 국기,공산전제를 극복한 자유주의의 수호.조국을 등지고
망명지를 떠도는 서양작가의 거울에 비친 동양의 경이로움이다.

부쿠레슈티철학대학 수학,신문기자,외교관,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전공,외교사절단으로 파리에 왔다가 망명한뒤 파리
영주,"25시"출간으로 세계적 문명획득,그리스정교회 신부서품이후 사제로
봉직.파란의 생애를 45년동안이나 망명지 파리에서 보낸 그였다. 40여권의
저작이 보여주듯이 독재와 전제에 저항하면서 조국의 질곡이 풀릴 날을
희구해오던 영원한 자유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