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경제정책방향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달라 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물론 오늘날의 복잡한
경제구조에서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집어내는것은 전문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장하는
방향이 다른 탓도 크다.

가장 뚜렷한 예로 최근의 경기동향해석및 하반기 통화재정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기업의 의견대립을 꼽을수 있다.

올해 1분기중 실질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같은기간의 8. 7%에서 7. 5%로
낮아져 적정성장률인 7%선에 가까워졌다. 수출증가율이 13. 6%로
수입증가율 9. 2%를 앞질러 국제수지도 개선되었으며 4월까지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3. 2% 오른데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의 5. 4%에 비해
상당히 안정되었다.

이러한 경제지표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정부는 우리경제가 경기과열에서
벗어나 안정되고 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안정이라기보다
경기침체가 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올들어서 14개의 상장기업이
쓰러진 연쇄도산,6공들어 최저가를 기록한
증시침체,1분기에만1조1,000억원이 넘는 재고등이 업계주장의 배경이다.

이렇듯 생각이 다른 이유는 흔히 지적되는 지표와 체감의 차이말고도
업종별로 겪는 어려움이 다르다는 점과 정부주도경제에 따른
부작용때문이다.

올해 1분기중 제조업의 실질성장률은 7. 9%로 지난해 같은기간과 거의
비슷하지만 운수장비 전기전자등이 비교적 호조를 보인데 비해 의류
기계등은 어려움이 컸다. 또한 경기조정기간중에 고금리와 자금난으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건설경기가 과열되어
자재와 인력이 편중되고 부작용이 심해지자 건설허가를 행정규제하여
경기흐름을 어거지로 누른 탓도 크다. 정부정책이 경기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고통을 덜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정책의 방향은 어느정도 가닥을 잡을수 있다.
거시경제지표의 안정적인 움직임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우리경제의
체질개선과 산업경쟁력강화를 위한 미시조정정책을 서두르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경제상황은 체질개선의 성공여부에 따라 경기안정으로
굳어질수도 있고 경기침체로 악화될수도 있다.

올해 1분기중 건설업성장률은 4. 3%로 지난해 같은기간의 19. 7%에 비해
크게 진정되었으나 행정규제에 따른 건축허가면적 축소덕분일뿐 연말의
선거분위기속에 규제가 완화되면 다시 과열될 가능성이 있다. 물가안정도
서비스요금에 대한 행정지도와 공공요금인상억제에 힘입어 버틸뿐
유통구조개선 에너지사용합리화등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이런 "냄비경제"체질로는 정치적인 고려나 외부충격으로 행정규제가 풀리면
언제든지 경기과열과 침체,물가폭등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같은 논리는 지난8일 재무부와 한은이 가진 하반기 통화정책협의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하반기 총통화증가율을 계속 18. 5%로 유지하고
금리자유화 2단계조치는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추진하기로
했다는 합의사항은 상식수준이다. 합의내용에 찬성해서라기 보다는
우리경제의 체질과 선거를 앞둔 정부의 입장을 고려할때 어쩔수 없다는
뜻에서 "상식수준"이라는 것이다.

선진국은 말할것도 없고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해봐도
총통화증가율이 18. 5%나 되는데 총수요억제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무부는 통화공급축소보다 먼저 실질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총수요억제를 통하지않고 지금처럼 행정규제로 금리를
낮추려는 것은 임시땜질일뿐 성공할수 없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실물경기도 나쁜데다 단자사 업종전환등 금융시장의 구조조정까지 겹친판에
무작정 통화공급을 줄이는 것만이 잘하는 일은 아니다.

아쉽고도 중요한 점은 정부와 기업의 체질강화노력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정부는 행정규제를 통해 문제점을 가리기에 바쁘고 선거에 유리한
정책성과의 홍보에 열심일 뿐이며 재정긴축에는 뜻이 없다. 기업들도
자금난과 고금리를 탓할뿐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재고가 쌓이는데 올해 1분기중 제조업가동률이 80%를 넘는것은 기업들이
정부의 경제안정의지를 믿지 않고 선거를 의식한 경기부양책에 의지하려는
증거라는 일부지적이 전혀 근거없다고 할수있는가.

그렇다면 경제정책은 현상황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통화공급과
재정운용을 마무리하고 체질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중장기적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어차피 경제체질의 변화와
경제정책의 신뢰성이 하루아침에 얻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