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중인 "신산업정책"에 대한 재계의 우려와
궁금증이 날이 갈수록 증폭돼가는것 같다. 소위 "재벌"로 불리어지는
대기업그룹을 약화시키기 위한 모종의 대책이 마련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고있다.
급기야 대한상의는 지난 23일 "최근 경제동향과 정책대응 방향에 대한
업계 의견"을 통해"기업집단과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를 일단 재검토하고 그 시기선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공식건의하기에 이르렀다. 경제가 어렵고 특히 국내 기업의 경쟁력
배양이 시급한 시점에서 대기업 규제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호소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까지 한마디 말도 없다. 정체불명인채로 베일에
가려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디에서
비롯됐는지조차 애매모호하다. 소문으로는 지난연초 최각규부총리가 어느
경제단체 초청간담회에서 급격한 국내외 경제여건 변화에 알맞은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그
발상의 진원지가 청와대라는 설도 나돈다.
진원지가 어디이건간에 정부차원의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주도적으로 추진하고있는 경제기획원 실무진들은 재계가 긴장할만큼
획기적인 특별대책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7차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
제시된 여러가지 대기업정책의 실천계획정도에 불과해 신경쓸게 못된다고도
한다.
그러면서도 경제기획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등에 경제력집중 완화나
소유와 경영의 분리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연구과제를 부여했고 연구진행
과정을 협의 감독하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연구기관들이 추진하고 있는
과제는
부실기업처리,전문독립경영체제유도,상호지급보증축소,정책금융운용실태와
대책,기술개발 제도의 개선,기업경영의 효율화등 한결같이 경제체질
강화에 필수적인 과제들이다.
이렇게 보면 상당부분 작업이 구체화되고 있음도 확인되고 있다.
신산업정책을 둘러싼 갖가지 우려와 불안이 여기에서 싹튼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진행시키는 저의가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검토하면서 왜 이같은 행태를 보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큰일을 저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물밑에서
진행시킬 이유가 없다"는 재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흔히 제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결정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불신만 키워갈뿐이다.
정책결정과정이 충실해지면 여론이 올바르게 수렴되고 이해당사자들의
설득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신산업정책이 철저히 감춰진채 진행되고 있어 적지않은 부작용도 있다.
상공부등 일부 관련부처에서는 어떤 내용이 담길지 몰라 거론되고 있는
과제들에 대한 별도의 자료수집과 논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재계는 재계대로 정책방향을 점치느라 정력을 허비하고 있다. 크나큰
국력의 낭비임에 틀림없다.
우리경제는 지금 갖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중국에 밀리고 대만에
뒤처지면서 외국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힘을 합쳐 총력전을 펼쳐도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다.
요사이 정부와 재계의 틈새가 벌어지고 대기업들간에도 갈등이
깊어간다는 걱정들이 많다. 적전분열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경제
상황인 것 같다.
경제계의 공식적인 건의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는 분명
옳지가 않다. 신산업정책이 어떤 내용이든간에 하루빨리 정책구상의
방향과 과제등을 공개하고 광범위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할것이다.
밀실정책의 부작용이나 폐해는 과거에도 수없이 경험해 왔다. 사실
이미 착수된 신산업정책은 그 추진여부에서부터 공론에 부쳐졌어야 옳았을
것이다. 행여 현재 진행중인 소위 신산업정책이 "재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은 일부국민들의 정서에 영합하려는 것이라면 큰일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인기관리 차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이라면
더욱 위험스런 발상이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