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8명 딸5명 13남매를 낳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김귀주할머니가 25일
76회생일을 맞았다. 5남 전성우씨(44.한양대교수)집에서 마련된 이날
생일잔치에는 미국에 살고있는 두아들과 다섯딸이 참석하지못했지만
여섯아들과 며느리,손자 손녀가 모여 김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만수무강을 빌었다.
"고생도 했지요. 그러나 즐거운때가 더 많았습니다. 비뚤어지지않고
바르게 성장해준 자식들이 고마울뿐입니다"
김할머니는 이제 부러울게없다고했다. 그래선지 그의 얼굴에선 그늘진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6.25동란등 고통스런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명의 자식도 잃지 않았던것을 그는 "축복"이라고 불렀다.
그가 키워낸 여덟아들가운데는 박사만해도 5명이나된다. 장남 성균(60.
미미네소타대교수.의학박사) 2남 성일(58.포항제철경영과학연구소장.
경영학박사)5남 성우(한양대교수.사회학박사) 6남 성철(43.병호사 법학
박사) 7남 성현(37.국민대교수.경영학박사)씨등이다. 3남 성억(56.퓨리
나코리아이사)씨와 4남 성욱(50.제세메디코사장)씨는 경제계에서 일하고
있고 막내 성규씨(37)만 미혼으로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성화(54)성원(52) 성자(46) 성희(42) 성혜(40)씨 다섯딸은 모두
출가,지금은 남편을따라 미국가서 살고있다.
사위 손자 손녀를 포함해서 식구가 다 모이면 54명. 그러나 국내외
여러곳에 흩어져 살고있어 아직 전식구가 한자리에 모두 모여본적은 없다.
1916년 3월23일 대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17살때인 1933년 6살위인
전호렬씨(1964년작고)와 결혼했다. 전씨는 당시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집간해에 첫아들을 본 그는 2년터울로 내리 3형제를 출산했다. 3남이
태어나던 해에는 남편이 평양숭실대를 졸업한후 대구로 내려와 농장을
경영하게 된다.
"농장에서 양을 60마리정도 키웠어요. 새벽이면 양젖을 짜는 일꾼이
부르는 찬송가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참 행복한 시절이었지요"
그 목가적 행복은 그러나 남편이 경성치전에 입학,단신으로
상경하면서부터 깨져버렸다. 1년여동안 혼자 농장을 운영하던 김씨는
남편을 따라올라가 잠시 수원에서 함께 살지만 남편은 경성치전을
졸업하자마자 다시 만주로 건너가 용정의전을 다녔다. 6명의 자식들을
홀로 돌보며 살림을 꾸려가는 생활은 해방되던 1945년 8월 남편이 대구로
돌아와 "광제의원"이라는 이름의 이비인후과병원을 개원할때까지 계속됐다.
남편은 타계할때까지 20년가까이 "광제의원"을 운영했고 7명의 자녀가
그곳에서 출생했다.
"남편과 사별한후에는 자식들에게 좀 엄하게 대했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시는 티를 내지말라고 늘 타일렀지요. 아이들은 내말을 거역하지않고
한결같이 곧게 자라주었습니다"
김씨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애들이 병이 났을때"였다고 회고한다.
특히 큰딸이 뇌에 병을 얻었을때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고 간호했다.
정성덕분인지 큰딸은 2개월만에 완쾌됐다.
김씨는 지난 10여년동안 미국에 건너가 막내아들 큰아들과 함께 살다가
90년11월 귀국,지금은 6남 성철씨의 집(종로구 평창동417의8)에
기거하고있다. 세상을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도록 "목숨을 걸고" 자식들을
키웠다는 김할머니는 그동안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