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져있기는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이라고 하는 동경증시의 심한 몸살은 개방시대를 맞은 우리
증시의 입장에서 볼때 "강건너 불"만은 아닌것 같다.
마침 한일증시의 발전방향을 논의하기위해 지난 9일 내한한 나가오카
미노루(장강 실)동경증권거래소이사장(68)을 만나봤다.
동경대법학부를 나와 대장성에서 33년간 근무한 정통관료출신인
나가오카이사장은 불상연구에 심취해 한국에 올때마다 절을 찾는가하면
일본 오케스트라연맹 이사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연세에 비해 건강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지요.
나가오카이사장=많은 사람이 노년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골프가 좋다고
하지만 나는 골프를 하지 않습니다. 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신 퇴근후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기분을 자주
전환시킵니다. 어항속의 작은 금붕어가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기분전환의 좋은 방법이지요.
스스로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이 나의 건상유지법인 셈입니다.
나는 어렸을때 아주 병약했습니다만 자라면서 체질이 바뀌었는지
15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큰병을 모르고 지냅니다.
-대장성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는데 그곳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나가오카이사장=대장성에 몸을 담았던 33년동안 주로 국가예산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증권관련업무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국가예산을 다루시면서 얻은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나가오카이사장=예산편성때는 반드시 건전성을 유지해야한다는 점입니다.
도로와 댐건설등 공공사업을 일으키려면 많은 자금이 소요됩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소요자금을 공채발행을 통해 조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공채를 지나치게 많이 발행하면 국가경제가 허약해 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나친 공채발행을 자제하는 건전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지요.
-동경증권거래소 이사장직을 맡으신지도 벌써 4년이 지났는데요.
나가오카이사장=조금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나는 대장성에서
증권행정업무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1년은 증권업무를
공부하는데 보냈습니다. 이제는 업무를 상당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증권거래소는 공정하고도 "투명한"증권시장을
유지하는데 업무처리의 중점을 두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일본증시와 한국증시를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나가오카이사장=두 나라의 증권시장이 모두 어려운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현재 양국의 국민경제가 나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증시는 그동안 너무 호황을 누려왔다고 할수있습니다. 지금
일본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고도성장때문에 오늘날의 일본경제가 상대적으로 더큰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수 없습니다. 설비투자 물가
국제수지등 최근의 각종 경제지표들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닙니다.
현재 일본경제는 엄청난 무역흑자를 줄이기위한 구조조정과정에서
일시적인 조정국면에 진입해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지난 87년 사상유례없는 경제호황에 힘입어 주식투자붐이 일면서 주식값이
지나치게 급등했습니다. 상장기업들은 너도나도 증시에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갔습니다. 오늘날 일본증시가 주식공급물량의 과잉으로
허우적거리게된 원인이 되었지요.
현재 일본증시가 침체에 빠지게된것은 과거 "버블"경제시대에 지나치게
올라갔던 주가가 다시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블"이 가라앉으면서
증시침체가 초래된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해 증권회사의 거액투자자 손실보전사건등 스캔들이 잇따라
터져 많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증시에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침체를
부채질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올들어 한국증시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직접 투자를 하거나
관심깊게 증시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투자자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만 언제쯤 직접투자에 나서게 될까요.
나가오카이사장=각국의 경제활동은 국제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같은
경제활동의 국제화는 금융시장의 세계화를 뜻합니다.
동경증권거래소는 금융시장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증권사들에 문호를
개방해 현재 1백24개회원사가운데 25개사가 외국증권사입니다.
일본증권사들은 한국의 증권시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국내증권사들이 스캔들로 한국내 지점설치가 늦춰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개인투자자들도 엔화송금문제와 양도차익과세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다 한국증권거래소가 지정증권거래소로 정해지지 않아
한국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일본증권사들의 한국내 지점설치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할것 같습니다.
반면 엔화송금문제와 양도차익과세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예상돼
일본 개인투자자들의 한국내 주식투자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증권사들이 한국증권거래소의 회원으로 많이 가입하게되면
대한주식투자가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이 오는 90년대 중반께 주가지수선물시장을 개설하게되면
동경증권거래소의 경험을 알려주겠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도 동경증권거래소의 사무실이 개설되기를
희망합니다.
-증권정책은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가는것이 바람직할까요.
나가오카이사장=증권시장을 자유시장경제의 중심으로 키우고
활성화한다는 방향에서 증권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산업자금을
손쉽게 조달할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투자자들이 시장에 쉽게
접근해 투자를 할수있도록 하는것도 중요합니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흐름에 맡겨두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지난 60년대초의 주식보유조합설립과 같은 비상증시대책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증시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이제
이같은 조치는 상상도 할수 없습니다.
일본정부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경기회복대책과 투자자들에 대한
신뢰회복에 초점을 둔 증시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동경증권거래소는 투자자들에 대한 신뢰회복방안의 하나로 상장기업들에
금리수준보다 높은 배당을 실시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스캔들재발방지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회복되면 증시의 여건이 자연히 좋아져 주가가 올라가지만
증권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쉽게 치유될수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장께서는 일본 군국주의와 자유민주주의시대를 모두 거치셨는데
앞으로 한일간의 협력관계는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가오카이사장=일본인개인의 신분으로서 과거 일본이 한국에 가한
행위에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두나라는 가깝게 지내왔다고
봅니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두 나라가 나쁘게 지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볼때 지역주의가 점차 강해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는 미주 유럽 동남아등 3개 경제블록체제로 나눠져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동남아블록체제의 중심은 역시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불때 한일관계는 긴밀하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두 나라가 관심사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솔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하셨는데 바람직한 관료상은 어떤 것인지요.
나가오카이사장=일본관료와 한국관료들은 모두 성실한 것 같습니다.
관리는 작은 이해에 구애되지 말고 국가사회전체를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관리들은 나름대로의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의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은 주로
관청사무실에서 정책을 구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있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무실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현실사회의 움직임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취미를 갖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나가오카이사장=불상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취미지요.
5년전 한국을 방문했을때 경주에 들러 한국의 불상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 다녀왔습니다. 중앙박물관의 불상도
보았습니다.
나의 꿈은 인도 중국 한국등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불상을 보는 것입니다.
무슨 종교를 갖고있느냐고 굳이 물으신다면 불교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아직 신자라고 할 만큼 신앙심이 두텁지는 않습니다만.
음악도 좋아하지요. 서양의 고전음악과 일본의 전통음악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대담=김수배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