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들쑤시고 파내면 모두 냄새나고 썩은것 투성이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TV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어이쿠,저런 저런"하는 놀라움 뿐이다.
두렵고 무서워서 하루를 무사하게 살았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진다.
버스 운전석 유리창앞에 세워둔 "기도하는 소녀"의 사진생각이 난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화산의 폭발을 예감하면서 휴화산 아래 살고 있는 심정이다.
리비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마른 전쟁이 일어나질 않나,정계에선
대통령을 저마다 하겠다고 한꺼번에 여러사람이 소리를 높이질
않나,경제계에서는 탈세 부정대출 증권폭락 기업의 부도율이 늘고 문을
닫는 업계가 속출한다니 이만저만 불안한게 아니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이
무서워서 교수들이 숨을 죽이고 강의를 한다하고,부모는 아이들한테 기가
죽어 지내야하고,남편은 아내의 기세에 깔려 시선둘데가 없다는
신세한탄으로 날을 보낸다.
"지구가 내일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련다"고 말할
사람은 이제는 만날수 없게되었다. 운전대를 잡으면 정면으로 달려드는
맞은편 차선의 차를 피해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빨간 불에도
질주해오는 미친 차의 바퀴를 조심해야 한다. 공공의 약속이 지켜지기
어려운 시간속에서 우리는 살고있다.
우리들의 주변에 있는 모든것이 변하고 있다. 좋게든 나쁘게든 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조차도 변하려고 애쓰는 걸 본다.
그대로 있다는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집도 자주 옮겨야하고
직장도 직위도 심심치않게 바꿔야한다. 유행도 자주 바뀌어야 옷장수가 잘
되듯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도 자주 변해야 뭔가 국물이 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던가,그렇다면 변화란 좋은 것이고 옳은것인가.
정신 못차리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남으려면 그 변화의
물결을 미리 예상해서 타고 넘는 재주가 있어야한다. 정면으로 맞서거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말아야한다.
그 변화의 리듬을 어떻게 예상할 것인가.
하나님은 아직도 암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에이즈로 다시
시험하고있다.
고난은 고난을 불러들인다. 그래서 설상가상이라는 한자숙어가
실감나게한다. 그러나 고난 없이는 발전이 없기에 우리는 그 고난조차도
감사해야한다.
변화가 있어서 좋게든 나쁘게든 다른 상황이 생기고 그통에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고 불행해지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웃 나라에서 전쟁을
치를때 무기를 만들어 돈을 버는 나라가 있다. 다른 기업이 정신없이
홍역을 치를때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기세를 올리는 기업도 생기게
마련이다.
지구 깊숙한 곳에 매장되어있던 열 에너지를 지상으로 퍼올려서 태웠을때
그 열은 지구 둘레를 오염시키고 빈동공으로 남은 지구는 곧 함몰될
것이다. 이 무서운 변화를 눈앞에 두고도 우리는 평화로운 저녁식사를
할수있다.
아테네의 재앙은 같은 목욕탕안에 있는 귀족과 때밀이에게 똑같이 왔다.
둘 다 벗은채였고 다만 발에 족쇠를 끼고 안낀 차이가 있을 뿐이다.
화산의 뜨거운 용암이 분출되어 덮치는 변화가 내일 오더라도 오늘 우리는
식탁앞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오늘 즐거웠던 일을 얘기하며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여유를
가진다. 내일은 먼 들에서 따온 쑥을 넣어 만든 인절미를 보내온 친구와
만나 차 한잔을 함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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