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수상이었던 B 디즈레일리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어느 작가보다도
많은 작품을 써내 다작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엇때문에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고 "저는 때때로 소설을 읽고싶어집니다. 소설을
조금이라도 더 손에 잡고 있고싶어 제 스스로 쓰게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의사로 탐정소설을 써 유명해진 코난 도일도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인기가 올라가 다작을 하게 되었다. 원고청탁이
이곳 저곳에서 밀려들자 그것들을 도저히 써낼 도리가 없었다.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여버리면 다시는 청탁이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끝에 스위스의
어느 폭포에 빠져 죽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독자들의
투서가 날아들고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들이 쫓아다니면서 집필을
계속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는 어쩔수없이 죽은 주인공을 살려내
시리즈를 이어 나갔다.
지난3일 작고한 소설가 이병주씨(71)또한 다작을 한 작가로 손꼽힐만
하다. 44세가 되어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단생활 27년동안에
2백자 원고지로 10만여장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80여편이나 남겨
놓았으니 말이다. 줄곧 하루에 10장씩을 써온 셈이다. 절정기에는
하룻밤에 2백장을 써내면서 며칠밤을 꼬박 지새우는가 하면 대하장편소설
편수에서도 단연 선두를 유지할 정도로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력과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의 소설세계는 "현대가 살아 숨쉬는 역사"였다. 고전에서 현대사상에
이르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자아를 허구적 현실에 투영시킨 산물이었다. "소설은 존재할수 있었던
역사"라고 한 프랑스작가 에드몽 공쿠르의 말이 그의 문학적 신념을 설명해
주는데 더 알맞는 것같다.
2차대전후의 잔영을 추적한 첫작품 "소설 알렉산드리아",해방뒤 좌우
이념의 갈등속에서 방황하다 죽는 한 지식인의 삶을 그린
"관부연락선",제1공화국을 해부한 "산하",5.16쿠데타와 제3공화국의
부당성을 비판한 "그해 5월",일제말부터 휴전협정 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민족분단이 빚어낸 주인공들의 비극적 삶을 묘사한 "지리산"등 베스트셀러
대부분이 현대사를 주제로한 것들이다.
일본에서의 수학,일본학병 출정,남로당 간여,대학 강의,언론계 종사,필화
투옥등으로 이어진 그의 파란과 방황이 "문학은 곧 역사"라는 도식을
이끌어내게 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관조적으로 응시했을뿐"이라는
일각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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