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에 불안한 4월이 시작된다.
4월이면 으레 대부분의 회사들이 자금난으로 시달려 왔고 올해도 이
달갑지않은 "손님"이 예외없이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산업계에 짙게
깔려있다.
통화당국은 신축적인 통화운영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기업들로서는 미덥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4월에는 계절적으로 자금수요가 많다.
부가가치세(1조7천억원)9월결산법인의 법인세(5천5백억원)특별소비세
주세등 각종 세금납부액만 해도 3조2천억원이나 된다.
배당금(3천7백억원)및 신도시아파트중도금납부등을 합하면 4조원정도의
자금수요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선거가끝난뒤 금융당국에서 통화를 환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기업자금담당자들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작년말과 연초에 발행한
중개어음 5천7백억원이 다음달에 만기가 돌아온다. 이만큼 다시 발행하면
별문제가 없지만 최근들어 잘 팔리지 않아 초조함은 더해간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반면 풀 돈은 그리많지않다. 다음달
통화운용계획이 발표되지않아 정확하게 공급량을 추정하기 어렵지만 여유는
없다. 통화증가율을 전년동기대비 18.5%로 잡을 경우 이달에 비해 오히려
줄여야할 판이다. 18.5%를 넘긴다하더라도 소폭 늘어나는데 그칠뿐이다.
수요와 공급의 거리가 불을 보듯 뻔한 셈이다. 기업들이 미리 자금을
끌어당기려는 이유를 알만하다.
이에대해 재무부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자금사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나 그렇다고 최악의 자금난을 겪었던 작년4월의 "악몽"이
재연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신규 통화공급량이
상대적으로 적은것은 인정하면서도 기업들이 추정한 4조원의 자금수요는
신규대출을 일으키지않더라도 어느정도 해결될수 있다는게 재무부의
설명이다. 예컨대 세금납부재원도 기업들로서는 어렵사리 구해야할
돈이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납부하고나면 국고로 환수돼 그만큼 새로운
민간여신을 창출해낼수 있다는것. 그러니까 기업들은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또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선거후 통화환수는 없다고 통화당국은
설명하고있다. 선거전에 돈을 풀고 선거가 끝나면 거둬들이던 패턴이
이번에는 선거전에 특별히 돈을 풍부하게 공급하지않은만큼 재연되지
않을것이라는 분석이다. 괜스레 선거후 긴축을 우려,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주문하고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부는 4월중엔 통화를 신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재무부가 밝힌 "신축운용"이 총통화증가율목표치를 어느 수준으로
가져가겠다는 식으로까지는 구체화되지 않고있다. 다만 자금수요가
많아지면서 금리가 뛰어오를경우 통화공급량을 연간 목표치(18.5%)보다
늘리겠다는 복안정도로 해석된다. 금리동향을 봐가면서 탄력적으로 통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입장이 실제 다음달 통화운영계획을 세울때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신축적인 통화운영이 자칫 통화증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은은
자금사정이 어려운 점을수긍하면서도 경제현상을 뜯어보면 여전히
물가불안이 가시지않아 경제안정쪽에 무게의 중심을 둬야한다고 보고있다.
그러기위해서는 신축을 강조해 고삐를 놓치지말고 안정적으로 통화를
운용해야한다는 것이다.
한은의 안정과 재무부의 신축을 통화증가율이라는 숫자의 차이로
계량화할수는 없다.
기업들은 신축운용으로 방향이 잡히더라도 4월을 그리 간단하게
보지않는다. 시장에서 자금을 미리 끌어당기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알수있다. 콜금리가 지난 27일 올들어 처음으로 16%대로
뜀박질했다. 콜금리의 오름세는 다음달로 들어가면 금리상승을 전반적으로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기업들이 4월을 불안스레 맞고있는것도 이때문이다. 설비투자수요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자금난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기업들의 부도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판이어서 피부로
느끼는 불안감은 예사롭지 않다. 선거를 의식해서 부도를 "지연"시켜온
정부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들의 태도에 있다. 자금사정이 실제로 좋고 나쁜지에
관계없이 나쁠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재무부등 통화당국이 기업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위해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것은 이점에 착안한것으로 풀이할수있다.
지난 28일의 제3차금융협의회나 30일의 전국은행장회의
단자사사장단회의등을 잇따라 소집한것도 이같은 진정책의 일환으로
볼수있다.
통화당국은 금년 4월만은 "잔인한달"로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올4월도 연간 자금사정의 고비인것만은 틀림없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