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발전은 역설적으로 정치적 영역의 축소다. 왕에게 있던 주권이
민에게 돌아온 주권재민은 대표적 예이다. 삶의 권리와 책임을 개개인이
더 많이 확보하는 과정을 정치적 발전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왕권신수설은 옛날 얘기가 됐다.
한국은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괄목할만한 정치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것을 민주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의식면에서는 정치적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증폭되고 있는 느낌이다. "민주화"가 아니라 "정주화"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민주화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클수 밖에
없는 일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균형을 잃어 개개인의 생업에 대한
관심까지를 매몰하는 압도적 수준까지 이른데에 문제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관심이 온통 선거에 쏠렸던 사실을 부인할수 없다.
생업을 팽개치고 선거운동에 뛰어든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살아가는
문제의 전부가 정치인양 다른 중요문제들은 실종되었다. 이러니 아까운
시간들을 잃어버리고 경제가 흔들흔들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손을 놓고 있는데 물건이 만들어지는 요술은 없다. 속말로 "정치가
밥먹여주나"하는 표현을 쓰고싶을 지경이다.
국민들의 정치경도는 상업적 경쟁에 들떠있는 매스컴에 그대로 드러났고
더 부추겨졌다. 신문지면들은 선거기사로 맥질되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경제 구석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상품이 어떻게 밀려나고 있는지,어쩌면 정치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외면되었다. 선거에 의한 문맹이 조장된 것이다. 매스컴은
국민들에게 정치편식을 제공하여 한국의 체질적 문제를 야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업에 대한 집착을 무너뜨려 세끼식사보다는
정치영양제에 매달리게 만든 꼴이었다.
총선이 끝나고도 대권향방과 관련된 뉴스가 큰 분량을 계속 차지하고
있다. 한 정당의 대권후보자경쟁은 나무랄수 없는 정상적 절차다.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다른 모든 중요한 일을 제쳐놓아도
좋을만큼 절대적 중요성을 가진 일이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국가에선 있을수 없다. 그것은 다원적 구조의 국민의 삶을
바지저고리로 만드는 셈이다. 정치가 선이 되려면 정치몫만큼만
연출해야하는 것이지 그이상이 되어 다른 것까지 지배하게 되면 그것은
해독이다. 우리는 지금 과잉된 정치의식의 무덤을 파고있는 격이다.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거론되고 있고 연말에 있을 대선이 줄기차게
국민들의 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뉴스가 이를 증폭시킨다. 올 한해의
국가적 기운이 온통 정치에 쏠릴지 모른다. 이래가지고 각자의 생업향상을
바탕으로한 경제활성화가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기술개발 생산성향상
품질개선에 집중해야할 마음을 정치가 뺏어간다면 경제는 정치를 위한
속죄양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관심이 이처럼 극성을 부리는 것은 우리가 왕정시대처럼 정치에 의한
구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마디로 후진국현상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선 경제에 의한 구제가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개인
스스로에 의한 구제가 또한 기둥이다. 정부의 보험적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모든 것을 의탁하거나 책임전가하는 것은 주권의
포기와 다름없다. 더구나 국제화시대에선 정부의 경제기능은 축소될수
밖에 없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정치가 모든 부문에 대한 무분별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정치의식과열의 원인일수 있다. 민영화된 은행의 임원인사에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가 경제를 협박하는 일도
종종있다. 점영군처럼 그룹기업의 해체운운 소리도 들린다. 시장기능에
맡겨놔도 될 일을,시장실패의 치유가 아니라 시장지배를 기도하여
정부실패를 자초하려 한다. 6.29이후의 민간주도경제논의도 사라진것
같다.
너무 부풀어진 정치의 몫을 줄여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분수에 맞게 진정시켜야 한다.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제자리를
지키며 가계부의 일정한 부식비처럼 정치관심을 제한해야 한다. 비생산적
정치열중을 절제하지 못하면 파산의 위험이 따른다.
정치에 모든 관심을 내주는 것은 주권의 수호같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권의
상실이다. 개개인이 지니고 지킬 것을 왜 정치에 의탁하려 하는가.
개개인이 지키면 큰 주권이 지켜진다. 그 중요한 내용은 경제적으로는
생업이다. 모두가 생업을 지키면 경제를 지킬수 있다. 경제활성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몫을 줄이고 각자가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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