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굽히지않는 국제신사" "원칙중시하는 금융인" 지난25일자로 총재직을
퇴임한 김건전한은총재에 대한 언론들의 인물평이다. "강직하다"는 말도
듣는다. 이러한 성품을 반영하듯 그는 40여년동안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꼿꼿하게 지켜왔다.
특히 총재로 취임한 88년3월이후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쳤고 중앙은행 독립성보장등을 둘러싼 한은법개정파문이 한창 진행된
어수선한때였다. 더구나 80년이후 임기4년을 다채운 총재가 없었던 터여서
이번 김총재의 임기만료 퇴임은 그만큼 값진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4년동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면에서 문자 그대로
격동의 세월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한국은행으로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을 골자로 하는 한은법개정논의에 휘말리면서 상당히 어수선한
시기였다고 봅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총재로서 고충도 많으셨을
것으로 생각되고 때문에 퇴임하신 소감도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총재=사실 지난4년간은 국내외적으로 격동의 시기였고
한국은행으로서도 한은법개정파동이나 노조결성등으로 창립이래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런시기에 임기를 무사히 마칠수
있게된것이 큰 보람으로 느껴집니다. 주위의 모든분들이 음양으로
격려해주고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주위에서는 김총재를 소신이 뚜렷하고 꼿꼿하다는 평을 많이 합니다.
특히 한국은행내부에서도 김총재만큼 한국은행의 위상강화에 뚜렷한 소신을
갖고 계신분도 드물다는 평가들입니다.
한국은행이 정치권과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수립,시행해야한다는 소위 중앙은행독립성보장문제는 60년대이후 줄곧
제기돼온 문제이고 또 행정부와의 마찰도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김총재께서는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중앙은행독립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밝혀 2번씩이나 한국은행밖으로 밀려났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78년5월 한국은행이사에서 수출입은행감사로 전보된것이나 82년7월
은행감독원장에서 증권거래소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것이 모두 그런 경우가
아닌가요.
김총재=무슨일이든 열심히 하다보면 견해차이는 있게 마련입니다.
과거에 정부내에서 은행감독원을 한국은행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몇번 있었습니다. 이에대해 저는 중앙은행이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금융정책의 수립기능과 감독기능을 함께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금융자율화의 방향과도 부합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때문에 견해를 달리한적이 있었습니다. 또 기회있을때마다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려고 애를 썼기때문에 그 과정에서
시각을 달리하는 견해도 없지않았다고 봅니다. 이러한 견해차가
외부사람들에게는 마찰로 비춰졌겠지요. 한편에서 생각하면 본인의
인격수양이 부족했던게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좀더 부드러운
표현등으로 의견을 설득시켰더라면 더좋은 결과를 얻었지않았겠느냐는
자책도 해봅니다.
-지난 1951년9월에 입행해서 다소간의 외출도 있었습니다만 40여년을
한국은행에서 근무해오셨는데 아쉬움같은 것도 남을 것같은데요.
김총재=개인적인 아쉬움보다는 한국은행의 위상강화를 위한 법개정등이
아직도 미진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지난87년하반기부터
시작된 한은법개정파문도 헛된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더디고 답답하지만 인내를 갖고 꾸준히 추진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보장문제는 아직도 쟁점으로 남아있고 우리경제의
숙제이기도합니다. 중앙은행의 위상정립을 어떻게 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총재=오늘날의 모든 조직사회는 과거의 수직적구조가 허물어지고
다원화된 기능중심의 수평구조로 이행돼가고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한가정의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맹목적으로 부창부수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부자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지시나 복종의 요구는 통하지
않게된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가족구성원의 의사나 고유한 영역을
상호존중해주어야 화합하는 원만한 가정이 유지될수 있습니다.
한나라에 있어서 각기관간의 관계나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고유의 기능이나 업무영역이 상호존중되고
그래서 각기관이 자율과 책임의 원칙하에 제기능을 원활히 수행해나갈때 그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책임제하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주무부서가 재무부라는 얘기도
일리는 있는 것 아닙니까.
김총재=책임소재나 기관의 독립등을 따진다기보다는 통화금융정책은
중립성이 최대한 보장되면서 정부의 여타 정책과 조화를 이룰수 있도록
돼야한다는 것이 제생각입니다. 통화가치의 안정이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이라고 한다면 통화금융정책에 대한 정치나 행정부의 영향을
안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한은법은 60년대 경제개발초기단계의
경제여건과 경제운용방식에 맞춰 짜여진 골격이어서 이제는
우리경제여건변화를 감안해서 개선돼야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앞서 이뤄져야할 것은 실제의 관행을 개선시키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이나 업무영역을 정부가 존중해주는 관행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화제를 좀돌려보겠습니다. 1952년3월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돼있는데 한국은행에 들어가게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었습니까.
김총재=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당시 6.25동란직후여서 모든 기관들이
정착이 안돼 당시 안정된 직장으로 택할만한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선배들 얘기로는 직장에 다니면서 계속 공부를 할수 있는 곳이
한국은행이라고 해서 들어가게 됐지요.
-62년3월에는 주서독대사관 상무관으로 옮기셨던데요.
김총재=그후 약3년동안 근무하고 다시 한국은행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그것도 동기는 단순해요. 한국은행에 들어와 10년이 넘었는데도
대리승진도 안되고해서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문광고를 보니까
상공부에서 상무관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당시는 채용을
공정하게 한다고해서 공개시험을 보았지요. 젊은시절이니까 해볼만하다
싶어 시험을 봤더니 합격이돼서 근무했습니다. 이기간중 무척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월남정부자문관을 지내신적도 있으시지요.
김총재=아주 잠시입니다. 당시 한국은행자금부장시절 입니다만 당시
미국정부가 월남경제지원을 위해 수출진흥전문가를 파견해주도록
우리정부에 요청했었어요. 당초 석달계약으로 갔습니다만 1개월도 못돼
월남패망을 맞아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고향은 어디십니까. 국민학교는 광주에서,고등학교는 대전에서,대학은
서울에서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김총재=원래 어른들의 고향은 부산동래이고 거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선친께서 월급쟁이를 하셨기때문에 여기저기 옮겨다녔지요. 그래서
국민학교 5학년까지 광주 서석국민학교를 다녔고 그뒤 대전으로 이사와
대전고등학교(당시5년제대전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이야 모두들
서울로 오니까 서울에서 다녔구요.
-많은 사람들이 김총재를 "강직한 분"이라고 평합니다. 평소의
생활신조라고 할까요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총재=생활신조라기 보다는 오랜 직장생활에서 얻어진 귀중한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조직이건간에 지켜야할 규정이 있고 사회통념상의
관행이 있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흔히 웃사람들은 이러한 규정이나 관행은
아랫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은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 한결같이
아랫사람들에게 엄격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되니까 조직이 흔들리고
웃사람들이 존경을 못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항상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시말해 상대방 입장을 이해해주려고 합니다.
또하나는 지나친 욕심을 없애야 마음편히 살수있고 바른 길을 걸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김총재=천성이 욕심을 부리지않고 사니까 마음이 편하고 그래서 잠을
잘자기때문에 특별히 신경쓰는것은 없어요. 다만 나이가 먹어가니까
운동량이 부족해 1주일에 서너번씩 헬스클럽에가서 운동을 하곤하지요.
-후임 조순총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히 중앙은행의
역할등에 대해 견해를 같이 하고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김총재=훌륭한분이고 보기드문 적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분의 학문은
말할것도 없고 특히 부총리를 역임하셔서 행정경험을 갖고 계셔서 기대가
큽니다. 또 현재 한국은행에 근무하고있는 임직원들의 자질이 우수해 잘
이끌어주신다면 새로운 한은역사를 만들어 놓으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하실 특별한 계획이라도 짜놓으셨습니까.
김총재=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한국경제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처방이 전혀 없을까요.
김총재=현재 우리경제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능력한계를 넘는 성장을
추구한 결과라고 봅니다. 때문에 성장템포를 낮추어 각 경제주체들이 과거
호황시의 행태에서 벗어나 모두 씀씀이를 줄이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소의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이를 못참아 통화공급을 늘린다든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내린다든가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부도사태등도
최소화해야되겠지만 시장경제의 역사를 어차피 자연도태의 역사라고
봅니다. 고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 달라진 경제여건에 적응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감사합니다.
<대담=이계민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