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전부총리가 18대한은총재로 임명됨에따라 중앙은행인 한은의 위상과
역할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가 부총리로서의 관록과 경제학자로서의 탁월한 식견을 함께 갖춘
무게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은총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꿔놓으리라는 반응들이다. 게다가 화폐금융이론에 정통한 그가 평소
중앙은행의 독립필요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치일정등과
맞물려있는 한은법개정등과 관련,정부내에서의 한은자리매김도 예전같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한은을 찰지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신임총재의 취임을
반기고있다. 비록 한은의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는 외부인사이지만
역대총재에게 그랬던 것보다 훨씬 큰 관심이 그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바람은 한마디로 한은의 위상강화다. 한은은 그간 통화가치안정과
신용제도의 건전화라는 중앙은행의 "본업"을 소신껏 추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1950년 한은법이 제정되면서 나름대로 누렸던 독립적인
권한은 60년대로 접어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무부의
남대문출장소"로 불릴만큼 위상이 격하됐다는게 주위의 평이다.
70년대후반 정부주도로 진행된 중화학공업의 육성이 상징적으로 대변하듯
관치금융의 폐단이 나타났던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지금까지도 재무부와 한은을 수직관계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않을 정도다.
그 와중에서도 한은의 본모습을 되찾겠다는 몸부림은 끊임없이
계속돼왔다. 때로는 정치권의 바람을 타고,때로는 한은 내부에서 제기됐던
실지회복의 몸짓은 88년부터 89년까지 불꽃을 튕겼던 한은법개정공방으로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속에 조순 전부총리가 신임총재로 기용된 것이다.
그는 한은법개정논의가 열기를 더해가던 지난 88년말께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긴 글을 발표,주목을 끌었었다.
당시 그의 주장은 관치김융을 청산하고 정치민주화를 지향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앙은행이 독립돼야 한다는 내용.
그러기위해서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장을 현재의 재무장관 대신
한은총재가 맡고 모든 금융정책의 최종 책임도 금통운위에 두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처럼 한은총재를 재무장관이 제청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은 곤란하며 누구의 제청도 받지않고 대통령이 임명한 다음
국회동의를 얻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는 스스로 "한은총재가
장관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중요성에 있어서는 국회동의가 필요한
어떤 직책(예컨대 감사원장)못지않다"고 지적했었다. 물론 당시 학자의
신분으로 주장한 견해가 지금도 1백% 그대로 유효하다고는 볼수 없으나
개인적 소신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독립에 대한 비교적 뚜렷한 소신 못지않게 안정기조를 다져야 한다는
그의 경제 관도 한은사람들이 반기는 대목이다. 부총리시절에도 정치권과
재계의 눈총을 받아가며 경제안정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그는 지금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업의 자금갈증을 순간순간 풀어주기보다는 긴 안목으로 안정기조를
다지는게 오히려 중요하다는 한은의 입장이 조총재의 취임으로 더욱
강화될게 분명하다.
금융계와 관가일각에서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수 있다며 조총재의
앞날을 불안하게 보고있다. 그의 장래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엄연한
현실"을 지적한다. 통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재무부등 정부부처와
손발을 맞춰야하는데 그과정에서 부닥칠 현실적인 벽을 어떻게 뚫고나갈수
있을지 걱정하는 측도 적지않다.
한은은 때때로 정부주도로 기업을 살려내기위해 돈을 풀어야하는 상황에서
총대를 메는 경우도 생길수 있다. 본연의 업무가 통화가치안정이라지만
전체경제의 파국을 막는 일도 더 중요할수 있다. 또 통화정책도
재무부등의 협조를 얻어야만 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총재라는 자리가
풍기는 고상한 분위기 뒤켠에는 수없이 많은 행정행위를 놓고 정부부처와
입씨름을 벌여야하는 고뇌도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폭넓게 수용하지 못하고 이상론에만
집착,정부부처와 마찰을 빚지나 않을까하는 소리가 적지 않은 편이다.
조총재내정이 알려지자 그를 아끼고 존경하는 선후배들이 한편으론
고사해주길 바랐던 것도 이때문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가 88년당시
한은의 독립을 주장한 이후로도 한은법은 전혀 손질되지 않아 그에게
부담을 줄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신임총재의 의전절차도 까탈스런 대목중의 하나다. 부총리를 지낸
"거물"이 경제장관회의때 업저버자격으로 끝자리에 앉아야하고
국제금융회의때 재무장관을 따라 교체수석대표로 참석해야 하는등 모양새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속에 조신임총재의 임기 4년이 시작된다. 부총리시절처럼
학자아닌 행정가로서 헤쳐나가야할 힘든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개인 조순박사의 무게는 그누구 못지않지만 제도와 환경이
변하지않은 상황에서 총재의 힘으로 한은이라는 조직을 환골탈태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단순한 희망에 그칠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그가
노태우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총재자리에 앉게됐으나 1년도못남은
정부교체과정이 있어 4년임기에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무튼 그가 스스로 인정했듯 위축될대로 위축된 한은의 위상을 어떻게
높여갈지,또 정부부처와는 얼마나 조화를 이뤄낼지 주목된다.
<고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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