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혼미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가전제품 의류 신발등 주요산업들의
경기침체로 재고가 쌓이고 도산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쪽의
평가는 물가도 안정되고 국제수지도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20일 과천정부제2종합청사에서 열린 노태우대통령주재의 경제장관회의는
혼미한 경제에 대책마련보다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위한 낙관적인 전망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연 우리경제는 어떤 상황을 보이고있는가. 정부의 견해와 민간경제계의
감각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있다. 정부측은 내수소비와 물가가
진정되고 있으나 아직 미흡해 내수진정책을 계속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리는
반면 민간업계는 투자활동의 위축으로 경기침체가 초래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지수상으로 판단하는 경기수준과 업계가 피부적으로 느끼는
경기감각이 크게 괴리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도 내수진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는 있으나
일각에서는 이러다간 설비투자가 얼어붙고 마는게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있긴 하다.
최각규부총리는 최근 KDI주최 정책세미나에서 올들어 제조업투자부진에
대해 "내수진정책을 계속해 경제가 주저앉는게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만큼 기업들의 투자마인드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가전 철강 공작기계 의류등 주요 제조업체들이 본격적인 시설투자에 나설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투자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지적이다.
상장기업마저 줄지어 쓰러지는 상황에서 투자의욕은 사그러질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의 투자위축은 판매및 수출부진에도 기인하지만 심리적 불안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총선 대선이후의
정국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실제 1월중 설비투자동향을 나타내는 국내민간기계수주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4%나 감소했다. 지난해 초 석유화학등 일부 업종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음을 감안하더라도 감소폭이 우려를 자아낼만큼 큰 편이다.
설비투자는 고사하고 수출과 판매부진으로 재고가 쌓이는 바람에 조업을
단축하거나 생산라인을 폐쇄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수출주문도 시원치
않은데다 내수판매마저 부진해 감량경영이 불가피하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중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산업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3%증가에 그쳐 20%이상 높은 증가세를 보였던 작년 동기에
비해 현저히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동차 철강 전기등
주력업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있다.
2,3월에 들어선 1월보다 경기가 더 나빠졌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1월엔
설을 앞두고 반짝 경기가 일었지만 그후론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출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달들어 지난 18일까지 수출실적은
작년같은 기간에 비해 늘기는 커녕 1.2%가 감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진단은 업계의 감각과는 정반대로 평행선을 긋고있다.
한마디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내수가 다소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있어 현재의
안정기조를 지속해야 한다는게 정부입장이다.
경제기획원의 올 1.4분기중 경제전망에 따르면 도소매판매는 10.8%증가로
지난해 같은기간의 6.6%증가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내수용
소비재출하와 수입도 작년보다 높게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따라
1.4분기중 민간소비증가율도 8.5 9%수준으로 연간전망치 8^를 웃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출도 올 1.4분기중 11%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수입은 7.3%증가에 그쳐
무역적자규모는 작년보다 5억달러가량 줄어든 40억달러적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초 전망대로 국제수지적자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다.
더욱이 경제정책의 최우선과제인 물가가 작년의 절반수준으로 안정돼
안정궤도에 진입하고 있다고 만족스러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결국 물가안정과 국제수지적자개선이란 두가지 경제정책목표가 무난히
달성되고 있다는 게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한 정책당국의 총체적인
평가라고 볼수 있다.
전혀 동떨어진 평가를 내리고 있는 정부와 업계의 경기진단은 당분간 그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가안정 국제수지방어 산업경쟁력강화등 성장기반을 다지기위해선 적어도
2-3년간 조정기간이 필요하다는게 정책당국자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