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 시중자금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정책당국은
금융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막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어차피 선거에 필요한 돈을 개인의 장롱속에 비축해놓은 사람은 거의
없는만큼 선거철이면 으레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인출이 일게 마련이다.
이번 14대총선거가 보름앞으로 다가오자 바야흐로 선거자금수요가
본격화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유권자의 손에 손을 거쳐
돌아다니며 자금흐름을 예측할수 없는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앞둔 자금흐름의 변화는 몇가지 지표를 통해 유추해볼수 있다.
예금구성이 바뀐다거나,돈흐름이 빨라진다거나,갑작스레 뭉칫돈이
금융기관을 들락거리는등의 여러가지 양상이 선거철에는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금융관련 통계들은 수시로 집계되지않고 시간이 지난뒤에
알수있어 총선을 보름앞둔 지금 당장에 자금흐름의 변화를 명확히 알수있는
지표를 제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당시의 통화관리방향이나 설등
특수한 계절요인이 월중 어느시점에 끼여있느냐에 따라 자금사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거에 따른 변화를 꼬집어 내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금융기관에서 빠져나간 돈이 오랜기간 떠돌지 않고 개인의
일상생활이나 물품거래등을 통해 곧바로 금융기관으로 다시 들어오기
때문에 특정 시점에 얼마나 많은 돈이 선거자금으로 빠져 나갔는지를
계량화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금융자금의 선거자금화를 심정적으로
유추할수 있으나 물증으로 "이것이다"라고 내놓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이같은 한계를 감안하고 선거와 관련된 돈흐름발화를 감지할수 있는
지표를 따져보자.
가장 많이 쓰는 지표가 현금통화비율 요구불예금회전율 단자사
CMA(어음관리구좌)와 저축성예금의 인출등이다.
우선 현금통화비율은 통상 선거철이면 높아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과거의
사례를 통해 알수 있다.
12대총선이 있었던 85년2월 전후를 보면 선거때 현금통화비율이 다소
높아졌다. 85년1월 40.2%(M )기준였던 현금통화비율이 선거달인 2월엔
41.1%로 높아졌다.
13대총선거가 있었던 88년4월에도 현금 통화비율은 48.9%로 전월인 3월의
44.3%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입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손에 잡히는 현금통화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총통화가 절대량으로 늘진 않더라도 총통화에서 현금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 14대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이 비율이 눈에띄게
높아지지 않고 있다. 작년말 9.5%였던 현금통화비율은 1월말에 아무
변화없이 똑같았다가 2월말에는 오히려 8.5%로 낮아지고 3월들어서도 큰
변화가 없다. 현금통화비율이 높아질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거꾸로 낮아진 것은 지난 2월4일의 설날 이전에 상대적으로 현금이
늘었다가 그 이후 환수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다른 지표인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선거전후에 큰 변화가 있을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선거에 쓰려는 요구불예금형태로 맡겨둔 돈을 선거에
임박해서 꺼내고 그돈이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은행금고를
들락거린 비율인 요구불예금회전율이 높아질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13대선거를 치렀던 88년4월 전후에는 그랬었다. 88년3월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회전율은 23.5회였으나 선거날이 낀 4월에 24.2회로 높아지고
6월에는 다시 24.1회로 낮아져 선거철이면 자금회전이 빠르다는 통념을
입증했다. 그러나 12대총선이 있었던 85년 2월전후에는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선거 직전인 85년 1월 24.7회였던 요구불예금회전율이 선거달인
2월에 23.9회로 오히려 낮아졌다가 그이후에 다시 높아졌다.
요구불예금회전율만으론 완벽한 설명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 14대총선거
전후를 파악하기위해서는 선거가 낀 3월의 앞뒤 지표가 나와야만 가능한데
아직 집계가 되지않고 있다.
.이들 지표외에 금융자금의 선거자금화를 알수있는 통계로는 단자사
CMA의 인출과 증권회사 고객예탁금의 감소다. 입후보자나 또는 그
후원자들이 CMA나 고객예탁금형태로 맡겨둔 돈을 정치자금으로 쓰기위해
빼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CMA예탁금추이를 보면 이같은 가능성이 빗나가고 있다.
CMA예탁금은 지난 2일 하룻동안 2백86억원이 줄었으나 3일이후 하루
1백억원 안팎으로 오히려 늘고있다. CMA예탁금자체만으론 선거와 관련된
변화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단자업계관계자들도 항간에서 CMA예탁금이
한덩어리씩 인출되리라는 예측이 많지만 아직은 수치로만 보면 알수없다고
밝히고 선거가 더임박하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증권회사고객예탁금은 썰물처럼 인출되고있어 선거자금화의 조짐이
아닌가하는 유추를 낳고있다. 고객예탁금은 지난 2일 1백3억원,4일
1백68억원 빠지고 그이후에도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다. 다만 최근
증시전망이 나빠서 인출되는지,선거자금으로 빠져나가는지는 돈에 꼬리표가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
.아무튼 선거때만 되면 으레 사람당 몇십억원의 자금이 필요하게되고 그
자금이 금융권에서 나오기때문에 자금흐름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과
가정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일부지표는 이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자금사정이나 계절적인 요인이 그러한 변화의 특징을 희석시키고
한번풀린 돈이 곧바로 금융기관으로 다시 들어오는 과정에서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전후의 자금흐름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않다. 다만 어차피 정치에 필요한 돈이 금융권에서 나와
빠른 속도로 흘러다니는 만큼 절제있는 통화운용과 금융기관 스스로
자금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