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때 강제 징용된 2천여명의 한인포로 명단 46년만에 공개
1942년 일제에 강제 징용돼 남양군도 등지에서 처절한 징용생활을
하다가 미군의 포로가돼 하와이에서 집단으로 수용소 생활을 한 한인
징용자 2천4백62명의 명단과 당시에 제작된 태극기등이 제 73주년 3.1
절을 맞아 공개 됐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전촌리 속칭 진양지마을 염형진옹(74)이 29일
공개한 가 로 25 , 세로40 크기의 앞뒤 60쪽짜리 한지 책자에는 미군의
한인포로 2천4백62 명의 명단이 정갈한 문체로 기록돼있었다.
또 포로생활 당시 수용소에서 7호까지 발간된 자유한인보 주보 들도
고스란 히 보관돼 있었고 이때 제작한 태극기는 가로 세로 60 의 정사각형
광목천에 페인 트로 칠한 것이 거의 퇴색되지 않았다.
염옹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에서 소작농을 하던 24세때인 지난
42년 가 을 일본군에 강제징용된 이웃마을 청년 41명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 가시밭길을 걷 기 시작했다.
염옹은 남양군도의 빠리우도섬과 자세오섬등 일본군 전초기지에서
방공호와 비 행장 건설을 하던중 미군공군의 집중폭격으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미군포로가 됐던 것.
이후 염옹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년3개월에 걸친 포로생활을 마치고
조국 광 복과 함께 일본을 거쳐 46년 1월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
살고 있다.
염옹은 "당시 함께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중 6명만 살아 돌아왔다"면서
"뒤늦 게나마 보관했던 자료를 세상에 내놓아 일제의 잔혹함을 세계에
고발하고 이 자료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해 보관할 수 있게돼 이제는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원대 원영환교수(57.근세사 전공)는 "2차대전때 강제징용된
한인들의 생활상과 미군의 포로가 된 한인들의 8.15전까지 포로생활상을
한눈으로 보여주는 근세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면서 "짧은기간의
포로생활이었지만 미군 포로 생활을 그린 주보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다가 미군의 포로가돼 하와이에서 집단으로 수용소 생활을 한 한인
징용자 2천4백62명의 명단과 당시에 제작된 태극기등이 제 73주년 3.1
절을 맞아 공개 됐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전촌리 속칭 진양지마을 염형진옹(74)이 29일
공개한 가 로 25 , 세로40 크기의 앞뒤 60쪽짜리 한지 책자에는 미군의
한인포로 2천4백62 명의 명단이 정갈한 문체로 기록돼있었다.
또 포로생활 당시 수용소에서 7호까지 발간된 자유한인보 주보 들도
고스란 히 보관돼 있었고 이때 제작한 태극기는 가로 세로 60 의 정사각형
광목천에 페인 트로 칠한 것이 거의 퇴색되지 않았다.
염옹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에서 소작농을 하던 24세때인 지난
42년 가 을 일본군에 강제징용된 이웃마을 청년 41명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 가시밭길을 걷 기 시작했다.
염옹은 남양군도의 빠리우도섬과 자세오섬등 일본군 전초기지에서
방공호와 비 행장 건설을 하던중 미군공군의 집중폭격으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미군포로가 됐던 것.
이후 염옹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년3개월에 걸친 포로생활을 마치고
조국 광 복과 함께 일본을 거쳐 46년 1월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
살고 있다.
염옹은 "당시 함께 징용에 끌려간 청년들중 6명만 살아 돌아왔다"면서
"뒤늦 게나마 보관했던 자료를 세상에 내놓아 일제의 잔혹함을 세계에
고발하고 이 자료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해 보관할 수 있게돼 이제는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원대 원영환교수(57.근세사 전공)는 "2차대전때 강제징용된
한인들의 생활상과 미군의 포로가 된 한인들의 8.15전까지 포로생활상을
한눈으로 보여주는 근세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면서 "짧은기간의
포로생활이었지만 미군 포로 생활을 그린 주보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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