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의 흥분과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우리사회에서는 경제의
남미화 혹은 중남미화를 우려하고 경고하는 소리가 불쑥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말은 지금도 하고있다. 천문학적인 인플레,이를
보상받으려는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압력과 끊임없는 소요,엄청난 외채,정치
사회불안의 연속등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지경으로 암담한
남미경제증후군이 한국경제에도 번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남미경제의 모습이 최근에와서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흔히 ABC국가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에서 잇달아 민선정부가
들어서면서 종래의 "통제형"경제정책대신 시장중심적이고 외부지향적인
개발전략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그 결과 물가가 서서히 잡혀가고
경제성장률도 완만하게나마 회복되고있다고 한다. 더이상 남미를 극심한
경제난,경제정책실패의 상징내지는 본보기로 빗대 말할수 없는 때가 곧
올것같은 예감이다.
남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몇가지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 우선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남미국가들이 지금 전통적인 중남미형개발
모델을 버리고 아시아형,특히 한국형개발모델로 상징되는 수출지향형
공업화 성장전략을 선택하기로한 점을 지적해야한다. 다음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대한 보다 솔직한 반성과 함께 선진화를
향한 새로운 발전모델의 정립필요성을 새삼 제기하게 만드는 점이라고
할수있다.
최근 어느 민간연구기관(국제무역경영연구원)이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자유화경험과 교훈"이란 주제로 토론한 내용(본지
26일자 10면보도)은 바로 남미의 그와같은 최근의 정책변화와 한국경제의
진로를 한번쯤 진지하게 점검하고 논의해봐야할 필요성을 일깨워준 점에서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물론 어떤 합의나 결론은 없었다.
경제개발모델이란게 원래 확연하게 구분할수 있을만큼 정형화되어 있지
않을 뿐아니라 국가와 지역마다 다르고 잡다한 정책혼합(policy-mix)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쉴새없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에 중남미형과 아시아형개발전략간에 큰 차이가 있었던건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에 비로소 크게 각광을 받기시작한 후진국
(경제)개발이론과 관련해서 학자들은 각기 비교생산비법칙에 입각한
국제분업을 강조한 고전적개발전략과 케인즈류의 소득분석을 주축으로한
공업화성장 이론으로 맞서는한편 다시 인구가 조밀한 아시아와 그렇지않은
중남미에 서로 다른 류형의 개발모델을 권고했다. 아시아에는 과잉인구를
활용할수 있는 영세하면서도 노동집약적인 공업화,중남미에는 광대한
국토면적과 부존자원을 개발할 대단위 영농과 자본집약적 광공업화가
소망스럽다고 했다.
결국 중남미는 현실적으로도 농업과 방대한 외국자본에 의존된 광산개발및
수입대체산업에 주력해왔다. 또 그와같은 경제개발은 빈번한 정변과함께
강력한 국가통제하에 추구되었다. 이에대해 한국등 아시아의 성공적
개발국가들은 때로 강도높은 정부개입속에서도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와
민간기업활성화에 바탕을 둔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에 호소해왔다. 다만
대만의 경우 강력한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점이 한국과 구별된다.
우리는 이제 이렇듯 서로 다른 개발모델을 추구해온 중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의 그간의 경험을 보다 면밀하게 되돌아보면서 장차 가야할 방향,
우리나름의 새로운 발전전략과 모델을 가져야한다. 중남미국가들이
지난날의 개발모델을 청산하고 아시아적,아니 한국의 수출지향형 성장
전략과 시장경제의 창달에 나서기로한 사실은 일단 우리에게 긍정적인
교훈이다. 그간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한국의 지난날 개발전략이
기본적으로 적절한 것이었음이 다시한번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경제는 지금 거꾸로 지난날의 중남미화가
우려될 정도의 어려운 상황에 있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같은 기존
경쟁국들과 세계시장도처에서 힘든 대결을 하고 있음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등 아시아후발개도국에 장차는 중남미국가까지 가세할
추격에 밀리고 미.일.EC등 선진국들의 압력에 계속 협공을 당할 처지에
있다. 따라서 잘못된 점,그것을 과감하게 고쳐 선진국으로 도약할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한다.
중요한 것은 우선 일본형과 미국형선진화모델가운데 어느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일본은 생산과 수출 그리고 이제는 기술,미국은 소비에 초점을
맞추는 발전모델이라고 하겠는데 해답은 역시 일본쪽이어야할 것이다.
다음은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발전전략으로서 가령 유연하면서도
일관성있는 경제정책,성장과 안정이 조화되고 중소기업의 균형적 발전이
실현되는 산업정책 그리고 기술혁신과 경쟁력강화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