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발업계에 새바람이 불고있다.
합리화업종지정이란 외과적 처방까지 내려진 신발업계가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최근들어 일고있는 신발업계의 자구노력은 단순 생산성향상 노력에서
벗어나 라인축소등 생산부문의 합리화와 그동안 등한시해오던 마케팅분야의
강화등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새바람의 진원지는 우리나라 양대신발업체인 화승과 국제상사. 두회사
모두 올들어 신발관련부문 최고 사령탑을 교체하면서 신풍을 일으키고
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화승의 박정수사장(54)과 국제 부산공장장 한진출
부사장(51)은 신발과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인 비신발인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박사장은 식품회사인 (주)빙그레사장에서 자리를 옮겼다. 한일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한부사장은 국제에선 그동안 브랜드사업본부를 맡아왔다.
두 경영자의 공통점은 "생산"보다는 "마케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에서 일해왔다는데 있다.
국제 한부사장은 브랜드사업본부장시절 골프의류인 "프로메이트"의
상품광고에 직접 출연할 정도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부산에 부임한지 한달이 약간 넘은 그는 벌써부터 업계에서 "혁명을
하고있다"는 소리까지 듣고있다.
한부사장은 생산원가의 약 55%를 차지하는 자재비 비중을 줄이기위해
신발업계 처음으로 JIT(저스트 인 타임)방식을 도입했다. 평균 60억원
수준에서 유지되던 재고가 15억원선으로 줄어들었다.
첫 시도인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이어들의 대표적인
횡포사례로 꼽히던 노미네이션(바이어가 자재납품처와 가격을
지정해주는것)제도였다.
한부사장은 자재수급의 불공정거래를 근절하지않고서는 원가절감이
어렵다고 판단,일부 바이어의 이탈을 감수하고 과감히 노미네이션
제도를 철폐했다.
직원들에게도 생산성향상을 위한 다기능화를 요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임금수준을 높여줄테니 한사람이 2,3인역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마케팅. OEM구조속에서 가격결정권을 갖지못하고
있어 바이어들의 가격인하요구에도 속수무책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바이어들이 제시하는 가격은 우리의 생산원가보다도 20-30%낮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수준의 가격이다.
한부사장은 원가보다 낮은가격의 주문을 거절하는 한편 바이어들이
가격농간을 부릴수 없도록 대기업체를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할 생각이다.
국내 최대수출업체인 화승도 리복등 주요거래선의 가격인하요구에
라인축소로 맞서고있다. 최근 화승산업은 14개복식생산라인중 2개를
감축했고 앞으로 5년간 라인을 절반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가격을
내리기보다 생산을 줄여서 제값을 받겠다는 의지다.
빙그레사장시절 "영업지향적이어서 결정이 빠르다"는 평을 들은 박사장은
생산직은 물론 관리직사원도 대폭 감축,조직을 가볍게하고 1인다역의
경영을 추진,생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화승 국제등 대기업뿐아니라 생존문제가 더욱 심각한 중소기업경영자들도
스스로 살길을 찾고있다.
성보산업의 박광식사장(50)이 선두주자격이다.
경기중.고와 한양대화공학과를 나온 박사장은 대학졸업후 곧장 신발업계에
들어와 지난85년 성보를 설립한 전형적인 신발인이다.
박사장이 다른 경영자들과 다른점은 브랜드마케팅에 일찍 눈을 떴다는것.
박사장은 유럽지역에서 판매되는 닌자거북이 브랜드와 미국의 심슨패밀리
브랜드의 신발독점생산권을 확보,닌자거북이는 월 4만5천켤레,심슨
패밀리는 월1만켤레씩 생산 수출하고있다.
중간바이어를 거치지않고 수요처에 직접 납품하는 것이므로 가격도
짭짤한 편이다.
"이 두 브랜드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주문량도 점점 많아질
것"이라는 박사장은 "코리아나"와 "챈스"라는 자체브랜드를
개발완료,유럽과 미국시장에 직접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같은 LA기어물량에 의존해오다 최근 주문량감소로 힘없이 무너진
아폴로제화 한영실업등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그러나 신발관계자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이같은 "바람"의 확산이 빠르지
않다는 점이다. 악조건속에서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경영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다.
신발산업의 경쟁력을 확보,장기적으로 살아남기보다는 편안한 OEM장사를
통해 돈을 벌다가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신발을 포기하겠다는 경영자들이
상당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최근 부산신발업계가 "합리화"지정보다 대북한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1국5개사진출제한규정으로 해외투자가
어려워지자 단지 인건비가 쌀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심을 둔다는
지적이다.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이윤추구에만
주력하겠다는 심산이기도하다.
신발연구소 민병권소장등 대부분의 신발전문가들은 라인의 합리화를 통한
"생산성향상"과 브랜드개발판매라는 "마케팅"의 두 수레바퀴가 튼튼해지면
우리나라 신발산업이 빠른 속도로 회복될수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힘들게 일기시작한 새바람이 신발업계 전반을 휩쓸기를 신발관계자 모두가
바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