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거리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표선수 맏형 *****
대표팀 멤버중 최고참이면서 이번대회 동메달리스트인 이준호(27. 단국대
3년)는 지난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시범종목 금메달리스트.
그는 이때 쇼트트랙 3,000m에서 5분21초63으로 5분22초39의
벨드호벤(네덜란드 )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 당시 1,500m에서
우승한 김기훈(단국대학원)과 함께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금메달기대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다음해인 89년 소피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500m와 5,000m를
석권하면 서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며 90년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제10회 세계쇼 트트랙 선수권대회 3,000m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역시 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하는등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175 , 70 의 적당한 체구를 갖춘 이는 타고난 순발력과 지구력을
바탕으로 현 재 남자 5개종목에서 모두 한국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1,500m, 3,000m, 5 , 000m계주등 3개 종목은 비공인 세계신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화려한 기록을 내기까지 두차례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했다.
첫번째는 아버지인 이기준씨(57)가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중학교 1.2학년때.
그는 당시 빙상을 포기하는등 자포자기에 빠져 방황하자 시골에 내려가
있던 아 버지가 이를 알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 "서로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자"고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으며 이들 부자는 이때부터 분발해 멋진
재기에 성공했다.
이준호의 두번째 시련은 동국대대학원에 재학중이던 90년에 찾아왔다.
국가대표로 발탁돼 태릉훈련원에 들어가 있던 그는 연습으로 한
농구경기도중 발목을 심하게 다쳐 의사로부터 선수생활을 포기하라는
권유까지 받았던 것.
하지만 첫번째 시련도 거뜬히 이겨낸 이는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으면서 병원 에서 꾸준히 치료를 계속한 끝에 8개월만에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준호는 지금도 두가지 시련에서 벗어난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리라국민학교 1학년때 전국가대표 배기태와 함께 특별활동으로 빙상을
시작했던 그는 일찍부터 자질을 보여 국민학교 전국대회 우승을 휩쓸었으며
이때는 배기태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동북중, 서울고를 거쳐 동국대 1학년까지 스피드스케이팅을 계속한
그은 스피드 스케이팅이 비젼이 없다고 보고 쇼트트랙으로 과감한
방향전환을 했으며 이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법무사인 아버지 이기준씨는 아들을 따라 빙상장을 쫓아다니다가 지난
74년부터 빙상계에 관계하기 시작해 지난 74년부터 2년간은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기 도 했으며 현재는 중고빙상연맹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주소는 서울시 구로구 시흥동 1005 중앙하이츠빌라 10동 205호.